선생님들의 열정과 신념을 공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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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talk] 명사의 교실

우리 모두, 선생님이 처음입니다!



오래전, 배우 윤여정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쉽지 않고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느냐”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처음 살아 보는 거잖아요. 나, 예순 일곱이 처음이야.” 연륜과 경륜이 쌓였다고 해서 인생이 쉬워진다면 누구나 나이 들기만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이제 막 인생의 토대를 쌓기 시작한 어린 학생들을 바라보는 초등 교사들은 늘 고민한다. ‘나도 좌충우돌 살아가는데 내가 과연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있는 걸까?’ 이 질문에 수업 코칭 전문가 정민수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한다. “어느 교사든 완전하고 완벽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끊임없이 배우고, 나누고, 또 함께해야 합니다.”

글 유승혜사진 김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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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라는 가면은 제때 잘 써야 약이 됩니다

“BTS 좋아하세요?” 정민수 선생님이 불쑥 물었다. 교실 칠판 앞에서, 책장을 넘기며 포즈를 취하고 촬영을 마친 직후 였다. 세계적인 그룹 BTS를 싫어할 한국인은 드물지 않을까. 정민수 선생님은 여러 장의 BTS 앨범 중에서도 <영혼의 지도: 페르소나(MAP OF THE SOUL: PERSONA)>를 가장 좋아한다. 이 앨범은 정신 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카를 융의 페르소나 이론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융이 말한 페르소나 는 인간이 상황마다 역할에 맞게 쓰는 가면을 의 미한다. 선생님은 코칭 수업을 할 때마다 BTS의 노래를 예시로 들며 페르소나 이론을 꺼낸다. 
“선생님도 사람인지라 매일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힘들 때가 있죠. 그런데도 교사라는 페르소나에 갇혀 힘들어도 괜찮은 척, 몰라도 아는 척할 때가 많아요. 페르소나를 잘 쓰면 도움이 되지만, 그 뒤에 감춘 상처와 스트레스를 돌보지 않으면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지게 됩니다.”



|내면의 상처를 방치하고 있지는 않나요?

정민수 선생님은 소위 ‘수업 코칭 전문가’로 이름난 교사다. 전라북도를 중심으로 전국의 초등 교사들을 만나며 수업을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강의와 컨설팅을 한다. 교사의 성향과 심리를 분석해 어떻게 수업을 해야 교사와 학생 모두 성장하고 행복할지 연구하고 정보를 나눈다. 다시 말해, 수업 길잡이 역할을 하는 셈인데 그 첫 단계는 교사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수업에 열정과 노력을 쏟는데도 학생과 원활하게 소통되지 않고 성과가 보이지 않아 갑갑함과 공허함을 느끼는 교사들이 많다. 정민수 선생님은 이러한 교사들을 위해 교사라는 가면 뒤의 상처를 보듬고 각자의 강점을 살릴 수 있도록 자신의 진짜 가면을 함께 찾아간다.





|혼자보다는 함께 하면 더 쉽고 즐거워요


정민수 선생님이 현재 하는 활동 대부분은 교육 공동체 ‘엠디랑(mdrang.net)’에서 비롯되었다. 1999년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한 뒤 지금까지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엠디랑은 교사를 주축으로 한 회원 수가 3만 5천 명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20년 넘게 축적된 교육 자료의 대부분이 무료로 공유되고 있다. 정민수 선생님은 이 사이트를 직접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엠디랑의 이름은 ‘겸손하다(Modest)’와 ‘수업 도시락(Dosirak)’이라는 뜻을 더해 만들었다. 처음에는 예비 교사들의 자료 공유 모임으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성찰 협력 학교’라는 수식을 붙인 교사들의 교육 공동체로 발전했다. 선생님은 새내기 교사 때부터 엠디랑을 통해 자신의 수업 영상과 자료를 꾸준히 업로드하며 회원들과 공유했다. 자신의 수업 영상을 돌려 보며 보완할 점을 확인했고, 여러 교사와 의견을 나누며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았다. 공유하는 자료가 늘수록 입소문이 퍼지고, 회원 수가 늘면서 정민수 선생님을 직접 만나 수업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다는 교사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수업에 '왕도'는 없어도 '정도'는 찾아야죠

컨설팅을 한다고 해서 일방적인 코칭을 하는 것은 아니다. 수업에 참관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정도(正道)’를 찾아 나간다.
“수업에 왕도는 없어도 정도는 있어요. 그러나 교사 혼자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고 정도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아요. 제가 초보 교사일 때 저의 수업 영상과 경험담을 공유했듯 주변 선생님들과 같이 의논하고 협력해 나가야 해요. 그 과정 자체가 교사로서의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 돼요.”
이처럼 자연스럽게 ‘수업 코칭 전문가’로 유명해진 선생님은 교직 15년 차였던 2014년에 수석 교사가 되었다. 당시 수석 교사 동기들 가운데 연차가 가장 낮아서 ‘전국 최연소 초등학교 수석 교사’라는 타이틀도 붙었다.




|약점보다 강점을 더 자주 들여다 보세요

교사들의 고민은 다양하다. 교직에 첫발을 디딘 새내기 교사들은 자기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모르는 경우도 많아서 정민수 선생님이 먼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경력이 오래된 교사들도 슬럼프에 빠지면 우울함과 허탈함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수업 코칭을 하면서 자연스레 심리 상담을 공부한 정민수 선생님은 교사의 심리 상태를 객관화하고 분석할 수 있는 진단 도구 ‘수업 성숙도 검사’를 개발했다. 몇 가지 테스트를 통해 수업 능력과 수업 실행 지수를 다양성, 명료성, 몰입성, 효과성, 성공률 등 다섯 가지 척도로 구분해 분석할 수 있다. “수업 성숙도 검사를 통해 교사의 유형을 탐험형, 관리형, 분석형, 외교형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어요. 유형을 분석한 후에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를 알고 수업에 적용하는 거예요.”
정민수 선생님은 교사라면 누구나 강점이 있고 약점이 있는데 많은 사람이 자신의 약점에 집중하는 바람에 강점마저 약화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교사 자신뿐만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제가 가진 학급 경영 철학도 아이들의 강점을 내세우는 것이에요. 학부모 총회 때 반 아이들의 강점을 자세히 써서 학부모님들께 드렸는데 한 어머니께서 우시더라고요. 우리 아이에게 이런 장점이 있는 줄 몰랐다면서요.”




|모든 일상에 '1:2:7의 법칙'을 도입하세요

정민수 선생님도 교사 초임 시절, 방황의 시기가 있었다. 나름대로 자기만의 소신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학급 경영 방식을 문제 삼는 학부모를 만난 뒤부터였다. 상실감에 빠진 정민수 선생님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개인 심리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알프레드 아들러였다. 오스트리아의 정신 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호감의 1:2:7 법칙’을 말했다. 10명 중 1명은 나를 좋아하지만 2명은 나를 싫어하고 나머지 7명은 내게 관심이 없다는 의미다.
정민수 선생님은 나를 좋아하는 1명에게 집중하면 관심 없던 7명에게 호감을 얻는 것은 물론, 나를 싫어하는 2명마저 결국은 내게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말한다. 앞서 말한 ‘강점에 집중하기’처럼 관계에서도 긍정적인 측면에 집중하면 된다.
모든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를 100% 지지해 주기란 불가능하다. 그런데 자신에게 부정적인 2명에게 집중하다 보면 다른 7명은 물론이고 나를 지지하던 1명마저 관계가 소원해질 수 있다.




|나와 아이들을 믿고 천천히 여유롭게 나아가세요

정민수 선생님은 교실 수업을 등산에 비유한다. 산에 오르기 전에 등산로를 비롯해 날씨, 산세, 해발, 쉼터 등을 두루 알아 두고 혹시 모를 위급 상황까지 대비해야 하듯 수업 또한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또한, 하늘 아래 같은 산은 없으므로 여러 산을 넘어 봤어도 새로운 산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그래야 함께 산에 오르는 아이들이 안심하고 선생님을 따른다. 조금 뒤처지는 아이에게는 그 아이만이 가진 장점으로 독려한다. 수업은 누가 먼저 정상을 찍고 빨리 내려오느냐의 경주가 아니므로 서두르지 않고 쉬엄쉬엄, 나무와 하늘을 둘러보며 걷는 것이 좋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한 걸음씩만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사람마다 성장 속도는 다 다르니까요. 우리 반 아이들은 내가 가장 잘 안다는 마음으로, 선생님 자신을 믿고 아이들을 믿어 주세요. 선생님이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합니다. 우리 모두, 선생님은 처음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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