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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수업 루틴 탄탄하게 잡는 법



교사는 1년간 대략 1,000시간의 수업을 한다. 그 긴 시간을 모두 다른 주제로 수업을 거듭하다 보면 교사마다 본인의 말투와 행동, 수업을 풀어 나가는 방식이 쌓이고 의식하지 않아도 본인만의 수업 성향이 생긴다. 이렇듯 일상적인 수업에서 자주 활용하는 방법과 흐름이 바로 ‘수업 루틴’이다. 수업 루틴은 수업을 준비할 때도, 수업 중 교사와 학생이 나누는 대화에서도, 그리고 평가를 할 때도 만들어진다. 새 학기의 시작, 누군가에게 평가받기 위한 수업이 아닌 아이들의 역량을 이끌어 올릴 수 있는 영양가 높은 나만의 수업 루틴을 갖추고 싶다면? 수업 루틴의 필요성과 개발 과정, 다가올 미래 교육 속 수업 루틴의 방향성에 대해 유영식 선생님과 이야기해 보자.

글 전정아 사진 오경택

참고자료 <수업 잘하는 교사는 루틴이 있다>(테크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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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식 선생님은?
경기 안산해솔초 교사. 교육부 대한민국 수학교사상 및 경기도교육청 수업 명인, 배움중심수업 우수교사 인증제 1등급 3회 수상, 교육부정책 연구학교 및 혁신학교 교육 과정 담당 부장 등을 역임했다. 경기도교육청 평가혁신 정책 및 학업성적관리 시행 지침 등의 개발에 참여했으며, 현재 전국 선생님들에게 교육과정-수업-평가 실천 사례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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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루틴은 교사 자신을 위해 필요하다

교사는 수많은 학습 주제를 가지고 수업을 한다. 중·고등학교 교사는 하나의 수업을 준비하면 여러 번 활용할 수 있지만, 초등학교 담임 교사는 매 시간마다 새로운 내용으로 수업을 풀어내야 한다. 성취 기준으로만 따져 봐도 초등학교 고학년의 경우 약 200개에 달한다. 매번 새로운 내용으로 열심히 자료를 찾아 가며 수업을 준비하는 교사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반면 주로 사용하는 수업 방법에 단원의 내용을 녹여 내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수업을 준비하는 교사도 있다. 그들의 비법이 바로 루틴이 된 수업이다.


Q 교사가 만든 수업 루틴의 가치가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어떤 제반 사항이 필요할까요?
수업 루틴은 억지로 만드는 게 아닙니다. 교사 스스로 자신의 수업 성향을 반추하고 성찰하며 본인에게 맞는 수업 방법을 시도해야 해요. 그래야 자연스럽게 자기 몸에 맞는 방식을 루틴으로 만들어 나가며 성장하는 거죠. 이 과정이 반복되면 작은 단위의 교사 교육과정이 되고, 긴 호흡의 수업을 디자인할 수 있는 역량으로 연결됨을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과거 교육과정이란 곧 교과서 속 목차였습니다. 평가는 수업과는 별개로 일정 기간의 수업 내용을 종합해 단원 평가, 중간 및 기말고사와 같은 결과 중심 평가로 이뤄졌고요. 그래서 수업 시간에는 수업만 신경 쓰면 됐죠. 하지만 최근 수업의 담론은 수업 속에서 학생들의 배움을 확인하고 피드백할 수 있는 ‘과정 중심 평가’를 담아내는 것입니다. 평가와 피드백을 담은 수업은 ‘교육과정 - 수업 - 평가’의 일체화로도 연결할 수 있어요. 결국 수업 시간에 많은 것을 해내야 하므로 교육과정, 평가에 대한 역량도 함께 지닌 교사가 좋은 수업을 만들어 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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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선생님이 정리한 수업 루틴의 기본은 무엇인가요?

먼저 교사 본인만의 수업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수업 철학에 맞게 본인의 수업 흐름과 방법이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수업 루틴이 있다는 것은 곧 교과서에 의한 교육과정 운영 방식을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과서 너머의 교육과정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성취 기준이 요구하는 지식과 기능의 포인트와 아이들이 갖춰야 할 가치와 태도를 짚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 번의
시도를 통해 자기화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시행착오를 겪어 아이들과 몸으로 부딪쳐 보고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체화하는 겁니다. 수업 방법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중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수업, 다수의 학생이 받아들이기 쉬운 수업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Q 교사의 수업 철학이 바로 서야 수업 루틴이 흔들리지 않겠군요. 선생님의 수업 철학은 무엇인가요?
‘나와 함께한 수업이 먼 훗날 우리 아이들 머리나 마음에 남아 있게 하자’는 것이 제 수업 철학이에요. 아이들의 눈과 귀만 작동하게 하는 수업으로는 배움이 아이들의 것이 되어 미래에 활용할 수 없다는 걸 경험으로 깨우쳤어요. 오래전에 배운 나와의 수업이 아이들의 삶 속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게 하기 위해 수업이 갖춰야 할 것을 연구하고, 몇 번이고 실패와 수정을 거쳐 저만의 수업 루틴이 만들어졌죠.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자기 생각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수업 루틴을 개발하게 됐고요.

Q 정답이 없고 시행착오를 겪어 체화해야 하는만큼 교사 자신의 노력이 중요하겠어요.

맞아요. 그래서 저는 본인 수업을 영상으로 촬영하고 비평해 보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영상을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스스로 부족한 점을 찾고 고칠 수 있거든요. 내가 수업 당시 가졌던 마음가짐과 수업 습관, 수업 성향은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교사인 나를 중심으로, 다음에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촬영하고 입체적으로 확인해 보면서 자신의 수업 철학에 맞는 수업이었는지 되짚어 보는 거예요. 이러한 수업 성찰과 다짐, 실천이 모이면 좋은 수업 루틴이 됩니다. 또 아이들을 통해서 내 수업을 반성하는 것도 좋아요. 성취 기준이 요구하는 것을 밀도 있게 담아내는 것이 좋은 수업이잖아요. 아이들이 수업에는 즐겁게 참여했지만 성취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그 수업은 배움이 일어나는 의미 있는 수업은 아닌 셈입니다. 교육과정을 분석하고 수업을 만드는 것이 반복돼 하나의 습관이 되는 것, 그것이 본인의 수업 준비 루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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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을 위한, 그리고 나를 위한 수업 루틴

유영식 선생님은 역량을 키우기 위한 바람직한 수업 루틴을 형성하기 위해 먼저 최적화된 수업 흐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첫째로 성취 기준에서 학생들이 알아야 할 지식을 학습하는 ‘배움 탐구’다. 학생들에게 문제 상황이나 핵심 질문으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지식을 스스로 형성해 나가게 할 수 있다. 다음은 브레인스토밍과 미니 토의 등으로 성취 기준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만들고 표현하는 ‘배움 표현’ 단계가 이어진다. 이때 학습자 간의 다름을 인지하고, 이 간격을 좁혀 가며 학생의 자기 생각이 견고해진다. 마지막은 앞 단계에서 형성된 지식과 기능을 실제 생활 또는 다른 맥락에서 활용할 기회를 제공하는 ‘배움 활용’이다. 프로젝트나 보고서 작성, 역할극 등의 수업 방법을 차용할 수 있다. 위의 세 단계 흐름을 따르면 역량 형성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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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0여 년간 루틴화된 수업을 하면서 현장에서 기억에 남는 학생들의 반응도 있었나요?

대부분의 교육청에서 과정 중심 평가를 도입해 논술형 평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몇 년간 글쓰기 활동을 루틴화하다 보니, 아이들이 단답형 문제에도 본인의 풀이 과정을 글로 답하는 게 습관이 되는 것을 자주 봤어요. 최근에 연락이 닿은 제자가 당시 해 온 글쓰기 활동이 서술·논술형 문제를 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는 말을 듣고, 그간 해 온 노력이 헛되지 않음을 느꼈죠.

수업 루틴을 마련하기 위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나요?

수업 루틴에 활용하는 교육 자원 등의 아이디어는 아이들과의 수업 속에서 얻습니다. 앞서 말한 교과 글쓰기 중 ‘편지 쓰기’ 활동은 국어 시간에 아이들이 친구에게 편지 쓰는 것을 재밌어 하는 걸 보고 착안했어요. 그래서 전학 간 친구는 이 부분을 배우지 못했으니, 오늘 배운 부분을 글로 설명하는 활동으로 개발한 거죠. 이외에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하고요.

수업 디자인 역량, 수업 루틴으로 더하다


Q 미래 교육은 역량 중심 수업과 블렌디드 수업이 어우러진 양상이 될 텐데요. 수업 루틴에 여러 스마트 툴과 애플리케이션 등, 에듀테크를 녹이는 비법이 있다면 알려 주세요.

역량 중심 수업의 기초는 지식입니다. 이 지식 형성에는 원격 수업 방식이 효율적이에요. 때론 오프라인 방식보다도 인공지능 기능을 탑재한 원격 수업 플랫폼이 훨씬 최적화된 학습으로 학생들의 지식 형성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요. 학습 주제에 따라서는 에듀테크 기술을 활용해 직접 역량을 길러 줄 수도 있죠. 클라우드 기능을 활용한 협업 과제로 협력적 문제 해결 능력을 신장시키듯 말입니다. 예를 들어 단순 지식을 학습할 때는 오케이 마인드맵(Ok Mindmap)으로 협동 마인드맵을 제작해 개념을 탐구하거나, ‘구글 아트 앤컬처’로 사회, 세계 문화 및 미술을 알아볼 수 있어요. 아이들의 생각을 실시간으로 만나게 하고 싶다면 ‘멘티미터’로 설문조사를 하거나 ‘패들렛’으로 브레인스토밍을 할 수 있겠죠. 또 배움을 실제 상황에서 활용하게 만들고 싶다면 ‘망고보드’로 실생활에 활용할 포스터형 자료를 제작하거나 ‘키네마스터’로 동영상 편집 과제를 낼 수도 있고요.

Q 에듀테크를 수업 루틴에 활용하면 앞서 강조하셨던 수업과 평가의 일체화도 가능하겠군요.
맞습니다. ‘플리커스’로 개인별 스마트폰이 없는 교실이나 오프라인 환경에서도 평가 및 결과를 실시간으로 온라인으로 관리하거나 ‘소크라티브’로 제작한 온라인 퀴즈로 즉각적인 평가가 가능하죠. 이외에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 학생들의 온라인 포트폴리오 계정을 만들어 주면 상호 공유와 피드백도 자유롭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00년대 초반, 싸이월드 시절부터 학생 개인별 미니 홈피를 활용해 학습 자료를 온라인으로 누가기록하는 방법을 사용해 오기도 했고요.

Q 올 하반기에 ‘2022 개정 교육과정’이 고시됩니다. 지금보다 더욱 교사의 수업 디자인 역량을 요구하는 교육과정으로 변화할 것으로 예측되는데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요즘 교사’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예전에는 교과서 내용을 교사만의 효율적이고 재미있는 방법으로 수업에서 풀어 나가면 됐습니다. 하지만 지금 교사들에게는 수업 내용을 생성하는 교사 교육과정이 강조되고 있어요. 특히 ‘2022 개정 교육과정’으로 교사에게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빈 공간이 많이 주어질 겁니다. 이 빈 공간을 자신만의 색채로 디자인한 수업으로 풀어내는 것이 ‘요즘 교사’의 역량이 될 거예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처음 역량 교육을 도입했다면,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역량을 수업에서 구체화할 것을 강조하고 있어요. 현재 2022 개정 교육과정 개발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데, 선생님들이 수업 내에서 보다 쉽게 역량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자 노력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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