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왜 이렇게 교사 커뮤니티에 그만두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아?” 50대 선배가 물었다.
특히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20대 교사들은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3,40대 교사들은 정신적인 고통이나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는 말이었다 .
그 말을 들은 나의 반응은 간결하고 씁쓸했다. “그런 글 올라온 지 한참 됐어요.”
글 송은주(서울 언주초, 저서 <나는 87년생 초등교사입니다>)
얼마 전에는 알고 지내는 신규 교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악성 민원을 끈질기게 넣는 학부모와 갈등이 심해서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초등교사가 이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거라고도 했다. 이 신규 교사처럼 심각하게 고통을 호소하는 교사들, 그리고 할 말은 많지만 꾹 참고 학교로 출근하는 교사들과 즐겁게 학교에 다니는 교사들. ‘밀레니얼’ 이라는 같은 배경을 가진 그들은 어떻게 교사가 되었고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
동그라미재단과 진저티프로젝트에서 2018년에 밀레니얼 세대 교사 65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밀레니얼 세대 교사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재미와 의미를 추구한다. 자신에게 의미가 없으면 할 마음이 안 생긴다. 둘째, 개성을 존중한다. ‘선생님이니까’라는 말로 표준화되고 얽매이고 싶어 하지않는다. 셋째, 관심사가 많다. 그들은 단순히 취미를 넘어 잘하고 즐겨 하는 일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고 이로써 N개의 정체성으로 산다. 넷째, 디지털 네이티브이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웹과 앱을 다룬 웹 제너레이션, 앱 제너레이션이다. 다섯째,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정시퇴근이 매우 소중하고 복지도 충분히 활용하며 할 수 있는한 모든 자유와 권리를 누리고 싶어 한다.
이런 성향이 상황상 무시되거나 거부당할 때, 밀레니얼 세대 교사는 교직 생활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 밀레니얼 세대는 많은 이가 ‘IMF 키즈’다. 어른들에게 안정성이 최고라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랐고 안정적인 직업을 얻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안정적인 직업 중 하나인 초등 교사가 되기 위해 교대 입시에 최선을 다했다. 4년을 예비 교사로서 자질을 갖추는 데 집중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하니 그들은 혼란스럽다. 과거 이를 악물고 버텼던 인내와 노력의 열매가 생각보다 달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들이 초등 교사를 선택하는 과정에는 자신의 적성과 미래에 대한 기대도 물론 있었다. 사명과 직업이 가진 가치 때문에 선택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선택의 모든 이유가 온전히 자신에게만 있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초등 교사의 워라밸 실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는 ‘퇴근 후 자기만의 시간이 보장되느냐’이다. 5시도 안 되어 교문을 나서면 자유 시간이 펼쳐질 것 같지만 늘 그렇지는 않다. 시도 때도 없이 학부모의 전화나 문자를 받으며 답변을 해야 한다. 개인 사정에 따라 교사 월급과 삶의 질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도 하고, 거주지가 근무 학군에 속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사생활 보장 여부도 달라진다. 교사라는 직업이 주는 자긍심과 자아효능감 같은 정신적 만족감도 교사의 워라밸의 중요한 요소다. 교사의 워라밸에는 안정적인 학급 운영과 평화로운 학교생활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정신적 요소를 따지자면 정체성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교사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밀레니얼 세대가 의미를 특히 따진다는 점에서도 정체성은 중요하다. 정체성이 일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커뮤니티에 계속 “이 일이 나에게 맞는 걸까요, 나는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글이 올라오는 것도 당연하다. 그 질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과정에서 나오는 질문들이기 때문이다. 바쁘고 알차길 강요받았던 학창 시절을 지나 성인으로서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받아든 사람들. 학교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갈등 상황이 그들에게 뒤늦게 자신의 정체성을 묻게 한다.
그래서 많은 밀레니얼 교사가 벌써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한다. ‘벌써’라는 말도 사실은 적절하지 않다. 2, 30대부터 미래를 고민하는 교사는 오히려 현실 감각이 있는 사람이다. 정년이 보장된 교사를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린 학생들과 즐겁게 생활하다가 2, 30년 후에 퇴직하고 연금 받으며 사는 미래를 기대한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현실 충격도 큰 법.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의미 있지만 수많은 인간관계를 겪으며 그들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할 수 있을지 막연한 불안에 빠진다.
이미 교사가 된 사람들에게는 진로 선택권이 많지 않다. ‘퇴직할 때까지 평교사로 살기’, ‘관리자로 승진하기’, ‘퇴직해서 다른 길 찾기’ 정도로 추려진다. ‘퇴직할 때까지 평교사로 살기’는 경력 교사에 대한 기대와 인식 때문에 녹록치 않아 보인다. 경력에 맞는 능력을 갖추고 언제든 후배와 동료들에게 보여 줄 수 있도록 전문성을 갈고 닦아야 하는 압박감이 늘 따라다닌다. 고경력인데도 ‘승진을 하지 못 했다’는 색안경도 적절히 넘길 줄 알아야 하고, 승진을 준비하는 동료와 왕왕 있을지 모르는 갈등에도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나이 많은 교사는 어린 학생과 세대 차이가 너무 크다는 선입견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온·오프라인으로 증명해야 한다.
‘관리자로 승진하기’는 불필요한 경쟁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 밀레니얼 세대 교사에게는 매우 피곤한 과정이다. 그들은 이미 취업 시장에서의 무한 경쟁을 피해 안착했다. 실제 인성이나 역량보다는 점수 위주로 돌아가는 승진 문화에서 승진 하기 위해 애쓰는 선배, 동료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점도 있다. 지켜보자니 현 승진 제도에서는 승진을 하고 싶은 사람은 ‘인덕을 잃거나 워라밸을 잃거나’ 둘 중 하나인 것만 같다. 또 예상치 못한 복병은 평교사로든 관리자로든 2, 30년 후에 퇴직을 하더라도 받을 수 있는 연금의 금액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사실이다.
2015년 공무원연금개정에 따라 대부분의 밀레니얼 세대 교사들은 36년을 내야 65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인사혁신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에 임용된 교원이 30년 동안 재직할 경우 146만원, 2006년 임용 교원은 171만 3,000원을 받는다. 만약 50세에 퇴직하면 연금이 나올 65세까지 15년 동안 생계를 이어나갈 수단이 있어야 한다.
밀레니얼 세대 교사들이 교직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교사를 둘러싼 편견이나 왜곡된 인식이 많고 실제로 학부모와 학생과의 관계에서도 상처를 많이 받기 때문이다. 교권은 이미 붕괴되었다는 인식, 요즘 학교에는 존경할 만한 교사가 없다는 인식, 초등 교사는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인식, 고용 안정성만 믿고 노력하지 않는 집단이라는 인식, 방학이 있어 합법적으로 논다는 인식, 학생 수는 갈수록 줄어드는데 불필요한 교사 인력이 남아돈다는 인식, 고경력 교사는 요즘 어린 학생과 세대 차이가 커서 소통이 어렵다는 인식 등으로 교사는 학교 안팎에서 상처를 받는다.
자세히 따지고 보면 이런 인식들은 교직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다. 예를 들어 여름, 겨울마다 논란의 중심이 되는 교원의 방학은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분야의 연수를 가능하게 해 주는 교육공무원법 41조에 의거 근무지가 달라질 뿐 엄연한 근무 시간이다. 또 교사는 학기 중에 연가가 제한되므로 방학 때 연가를 쓰며 쉴 수 있다는 점을 놓치기 때문에 교원이 ‘방학을 이용하여 논다’는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교사를 꿈꾼다. 그러나 그 꿈이 정말 자기의 정체성과 내면의 소리로부터 나온 것인지, 아니면 사회에서 풍요로운 삶의 방식으로 인정하는 방식에 대한 무의식적 추종에서 나온 것인지 진지하게 돌아보고 선택해야 한다.
더불어 이미 교사로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을 둘러싼 편견과 왜곡된 인식은 합리적으로 그 타당성을 따져 보아 교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교권이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밀레니얼 세대 교사들의 삶과 생각에 대해 연구하며 발견한 사실은 밀레니얼 세대 교사들이든, 이전 선배 세대 교사들이든, 교사든 아니든,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어떤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점이다. 자기다움을 알고 선택할 용기와 잠재력이 있는 밀레니얼 세대 교사들에게는 지금까지 교사의 삶이라고 통상적으로 인식되어온 삶과는 다른 길을 선택할 능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