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초·중·고 그리고 대학까지 배우고 또 배운다. 학교의 선생님과 교수님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열심히 가르친다. 그런데 이런 가르침과 배움은 최종적으로 무엇을 얻기 위함인가? 덴마크의 ‘삶을 위한 수업’에서 이 쉽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다.
글 오연호(오마이뉴스 대표) | 사진 오마이북
|우리는 왜 배우는가? 왜 가르치는가?
덴마크는 ‘행복 지수 세계 1위의 나라’로 불린다. 최근 몇 년간 유엔의 행복 지수 조사에서 같은 북유럽 국가인 핀란드와 1, 2위를 다투고 있다. 이렇게 행복한 사회를 만든 원동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뿌리는 행복한 수업, 행복한 학교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행복 사회의 비밀’을 찾기 위해 지난 8년간 덴마크에 23번을 다녀왔다. 그 결과, 단행본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와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출간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덴마크 교사들을 인터뷰한 <삶을 위한 수업>을 번역했다. 강연장에서 만난 독자들은 내가 덴마크의 교실을 언급할 때 이런 질문들을 던졌다. 덴마크에는 왕따가 없나요? 거기에도 경쟁이 있나요? 시험은 어떻게 보나요?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는 어떻게 다루나요? 의욕 상실로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은 없나요? 선생님이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할 텐데, 덴마크 선생님들은 어떤가요?
“ 괜찮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게 어떨 땐 더 좋을 수도 있어.”
덴마크의 한 교사가 자기 미래에 대해 부담과 압박을 느끼는 학생들에게 해 주는 말이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시험이 좌우하면, 교사는 물론 학생들에게도 제대로 된 학습 동기를 부여할 수 없다.
|연령 구별 없이 똑같이 담은 11개의 철학
<삶을 위한 수업>은 그런 질문들에 답을 하고 있다. 나는 10명의 덴마크 교사들을 인터뷰한 책을 만들면서 적잖이 놀랐다. 과목이 다르고 가르치는 아이들도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전부 다 다른데, 기본적인 수업 철학이 어쩜 이렇게 닮아 있을까? 그들은 다음과 같은 11가지 점에서 똑같은 수업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1. 학생 이전에 인간이다. 공부 이전에 관계가 중요하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인간적인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 친밀함과 신뢰감이 있어야 한다.
2. 수업 진도를 나가기 전에 ‘왜’를 묻는 시간이 충분해야 한다. 왜 우리는 교실에 앉아 있는가? 왜 영어와 수학과 과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3. 학생이 경쟁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한다. 좋은 경쟁을 유도한다. 나쁜 경쟁은 나만을 위한 것이지만, 좋은 경쟁은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4. 상위 10%에 들지 않아도, 뒤처져도 끝까지 챙겨 준다. 작은 승리의 경험을 안겨 주면서 주눅 들지 않게 해 준다.
5. 학생 간의 배려와 협력을 중시한다. 배움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누군가와 협력할 때 더 잘 이뤄진다고 믿는다. 말하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들어 주기다.
6.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의 권력을 분점한다. 교사의 자율권을 중시하는 만큼 학생의 자율권도 보장한다. 비판 정신을 길러 주며, 학생을 ‘젊은 어른’으로 대접한다.
7. 학생들에게 스스로 선택하는 훈련을 끊임없이 시킨다. 그래서 자기 주도적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한다. 동시에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감당하는 힘을 길러 준다.
8. 시험을 위한 수업이 아닌 ‘삶을 위한 수업’을 한다. 실생활과 연관된 수업을 한다. 호기심이 최고의 교과서다. 교과서를 버리고 질문을 잡아라.
9. 인생은 통합적이다. 수업도 그러해야 한다. 그러려면 교사가 통합적이어야 한다. 정치와 음악, 영어와 과학을 한 시간에 동시에 통합적으로 가르칠 수 있으면 좋다.
10. 교실은 입시 전쟁터가 아니라 웰빙을 체험하는 생활 공동체다. 학교와 교실은 집같이 편안하고, 왕따와 폭력이 없는 안전한 공간이어야 한다.
11. 학교는 민주주의를 배우는 곳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삶의 현장이어야 한다.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참여하는 것이 보장돼야 한다.
|학교에서 기르는 4가지의 힘
결국 문제는 우리다. 덴마크가 어떻게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내가 <삶을 위한 수업>을 펴낸 이유는 학교에서의 가르침과 배움을 통해 다음 4가지의 힘을 우리 학생들이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자기 주도성의 힘이다. 공부하는 이유가 ‘우리 엄마가 기뻐하니까’라면, 인생이라는 마라톤과 공부라는 마라톤을 완주하기 어렵다.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스스로 뛰는 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힘이다. 내가 1등급이어서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엄과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교실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이 이렇게 도와줘야 한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도 함께 해 볼래?”
셋째, 협력의 기쁨을 아는 힘이다. 친구를 등수를 다투는 경쟁 상대로만 보지 않고, 친구의 장점과 나의 장점을 합치면 더 큰 나, 더 큰 우리가 된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함께하는 것이 귀찮은 것이 아니고 기쁜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줘야 한다. 그래야 장차 사회에 나와서도 협력을 잘하지 않겠는가. 그런 이들 가운데 진정한 리더가 나오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는 위의 3가지 힘을 얻음으로써 “인생은 살 만해” 하는 인생에 대한 낙관을 가지는 힘이다. 우리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을 주는데, 가르치고 배운 보람의 핵심은 이것 아니겠는가. 학생들이 삶을 긍정하고, 더 나은 우리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주어진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진취적으로 개척해 간다면 교사와 학부모도 교육의 보람을 느끼지 않겠는가.
이미 우리나라에 그런 교육을 하고 있는 교사들과 학부모에게 큰 응원을 보내며, 이 한마디를 전하고 싶다. “우리는 같은 별을 바라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