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차차 한 학기를 마무리할 시기. 그간 학생들의 행동과 성격을 파악했다면 이제는 학교생활 전반의 길잡이가 되어 줄 차례다. 이때 꼭 필요한 것이 상담이다. 심리 전문가인 한혜원 선생님이 학생과 학부모를 상담할 때 알아 두면 좋은 팁을 콕 짚었다.
글 유승혜|사진 오경택|도움말 한혜원(서울 우이초 상담 교사, <초등 감정 사용법> 저자)
1 교사는 전문 상담가가 아니에요
가르치는 일과 상담은 별개의 분야다. 교사가 상담에서도 가르치려고 하면 학생을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상담의 목적이 퇴색된다. 또 교사가 부담을 가지면 학생도 똑같이 느낀다. 평소 학생들과의 대화법을 조금씩 공부해 가는 것을 추천한다.
2 ‘해결’이 아니라 ‘알아 가는’ 거예요
상담을 하는 이유는 학생의 입장을 알고 이해하기 위해서다. 상황마다 다르지만 일회성 상담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드물다. 교사도 학생의 고민을 한 방에 해결해 준다는 생각보다는 학생을 알아 가고 배운다는 생각으로 대화를 풀어야 한다. 1년간의 장기 계획으로 관찰과 상담을 번갈아 한다.
3 여유롭고 안정감 있게 시작하세요
내담자인 학생이 안정감을 느끼도록 일대일로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장소가 좋다. 상담실, 연구실 등 다른 학생이 드나들지 않는 독립적인 공간을 택하자. 교사는 본인이 업무에 쫓기지 않는 여유로운 시간에 상담한다.
4 학생의 감정을 탓하지 마세요
모든 학생에게 상담은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자기 감정을 다루기 힘들어 하는 학생을 조금 더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짜증과 분노를 표출하며 제멋대로 말하는 학생,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며 속앓이를 하는 학생 등 감정 제어가 어려운 양상은 다양하다. 학생의 감정을 탓하지 않으면서 진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상담을 통해 짚어 본다.
5 나의 마음을 먼저 챙기세요
상담자인 교사의 마음이 안정되어야 내담자인 학생의 마음도 잘 들여다볼 수 있다.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를 간과하면 더 큰 우울감과 무기력함으로 힘들어질 수 있다. 평소 책임감과 부담감에 너무 얽매이지 않도록 하고, 마음이 너무 무거울 때는 스스로 내담자가 되어 심리 상담을 받도록 한다.
초등학생 때는 성격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발달하는 시기다. 사고를 확장시키고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생각할 기회를 줘야 한다. 그래서 상담할 때 ‘닫힌 질문’이 아니라 ‘열린 질문’을 해야 한다. 답을 정해 놓고 “맞아, 안 맞아?”, “했어, 안 했어?”라고 묻는 식의 질문은 학생과의 진솔한 대화를 이끌어 내기 어렵다. “선생님은 네 속마음이 궁금해. 이유 없이 그러진 않았을 텐데, 그렇지?”하고 열린 질문을 건넨다.
TIP 톡톡! 열린 질문, 이렇게 해 봐요.
“어떤 마음에서 그랬을까?”
“왜 그랬어?”라는 말은 공격적으로 들릴 수 있다. ‘왜’보다는 ‘어떤’, ‘무엇’, ‘궁금하다’는 말을 사용하자.
“그런 마음에서 그랬구나.”
선생님이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었다는 사실에 학생의 마음이 열리고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돌아볼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떤 문제에 대해 일방적으로 방법을 제시하기보다 스스로 어떻게 할지 생각하게 해 주는 편이 좋다. 이러한 질문은 아이의 사고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2 충분히 시간을 가지세요
상담을 통해 학생이 금방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학생이 새로운 가치를 배우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 상담은 학생에게 답을 가져다주는 시간이 아니라 함께 답을 찾아가는, 단계적 모색의 시간이다.
3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세요
쉽게 분노나 짜증을 표출하는 학생도, 어떤 기분인지 드러내지 않는 학생도 감정 표현이 서투르다. 더 나아가 자신의 속마음조차 모른다는 공통점이 있다. 교사는 우선 “그럴 수 있다”고 학생의 기분을 인정해 주고 그 감정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학생의 말을 먼저 들어주되, 학생이 “모르겠다”고 일관하면 객관식으로 “1번, 내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의미이니? 아니면 2번, 내 마음은 알지만 말해도 될지 모르겠다는 의미니?”하고 묻는다. ‘왜’보다는 ‘무엇’을 강조한 질문으로 학생이 가진 감정의 원인을 들여다본다.
4 단계별 대화를 하세요
1학기는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시기로 학생도 교사도 ‘탐색의 시간’이다. 학생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무엇이 강점인지, 또 약점인지 체크할 필요가 있다. 학생 상담 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혹은 “선생님이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하고 묻는 것도 좋다. 5월쯤 되면 학급에 어느 정도 안정이 찾아오는데 이때 초기에 체크해 두었던 부분들을 바탕으로 중간 점검을 한다. 이때 교사는 학생에게 ‘감시’하는 것이 아닌 ‘관심’을 많이 갖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2학기 때는 노력한 부분에 대한 칭찬과 학생이 가진 장점을 짚어 준다. 이렇게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 줌으로써 학생이 단점이나 고민을 수월하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이겨 낼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다.
1~2학년 “집에 가고 싶어요”
학교에 처음 적응하는 1학년 학생들은 분리 불안 증상을 겪기도 하고 학업과 규칙 등에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1학년 때 불안이 해소되지 않으면 2학년이 되어서도 매사에 자발적이지 못하고 위축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오늘 네 마음은 무슨 색깔이야?” 학생이 학교가 편안하고 재미있는 공간임을 느끼도록 대화를 이끌어 가면 좋다. 저학년은 보통 자기 속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요즘 고민이 뭐야? 뭐가 힘들어?”라고 묻기보다 쉬운 비유로 속마음을 살핀다. “오늘 기분은 무슨 색깔이야?” 혹은 “내가 만약 동물이 된다면 무엇이 되고 싶어?” 등으로 대화를 시작해 보자.
3~4학년 “친구들이 놀려요!”
3~4학년이 되면 학교생활에 적응해 한창 의욕이 생기고 근면성, 자신감이 향상될 때다. 그러나 마음먹은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좌절감을 크게 느낄 수 있다. 자신을 친구들과 비교해 의기소침해지기도 하고 반대로 자기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친구를 놀리고 괴롭히기도 한다
“오늘 기분은 10점 만점에 몇 점이야?” 스펀지처럼 습득이 빠르고 그에 따른 성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기인 만큼 고민거리나 속마음을 점수화시켜 묻는 것도 하나의 대화 요령이다. 몇 점이라고 대답하면 왜 그런 점수를 줬는지 이유를 물으며 자연스럽게 학생의 문제를 구체화시킬 수 있다.
5~6학년 “그냥 다 짜증나요”
정신적, 신체적으로 성숙해지는 5~6학년 학생들은 자아가 발달하면서 고민 또한 내면화되고 복잡해진다. 교우 관계, 부모와의 관계, 진로 문제 등 상담 시 다루어야 할 주제의 폭도 넓은 편이다.
“요즘 관심 있는 유튜버가 누구야?” 사춘기를 앞둔 고학년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문제를 언급하면 무성의하게 대답하거나 반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섣부른 조언 또한 대화를 망치는 주범이다. 유튜브나 게임, 연예인 등 요즘 학생들이 관심을 갖는 가벼운 흥밋거리로 대화의 물꼬를 트는 편이 좋다.
1 산만하고 충동적인 학생은?
명확하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 주고 규칙을 정해 일상을 구조화해야 한다. 상담도 오늘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또 몇 시까지 할 것인지 정확하게 알리고 시작한다. 평소 학생이 간과했던 부분들에 역할을 부여해 주고 특정 시일, 시간에 수행하자고 약속한다. 이때 학생이 성취한 부분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칭찬한다.
2 학급에서 겉도는 학생은?
선생님이 해당 학생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며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묻는다. 교우 관계를 탐색할 수 있도록 작은 미션을 주고 선생님이 뒤에서 도와주겠다고 북돋아 준다. 즉각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학생의 속도에 맞춰 함께 해결책을 찾아간다는 느낌을 주도록 한다.
3 우울하고 무력한 학생은?
가정의 협조가 중요한 타입으로 학부모와 별도의 상담을 진행한다. 학생에게는 그간 선생님이 발견한 장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리면서 학생이 어떤 활동에서 흥미와 성취감을 느끼는지 알아본다. 햇빛을 쐬고 걷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야외에서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다.
4 힘을 과시하는 학생은?
학급에서 권력을 과시하는 학생이라면 일단 그 힘을 인정해 준다. 누구나 가진 인정 욕구를 그대로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너는 영향력이 있는 아이니까 선생님을 도와주면 좋겠다”는 식으로 대화를 이끈다. 가령 “너라면 약한 친구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거야”라고 말을 하며 자칫 단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을 강점으로 만들어 준다.
다수의 학생을 담당하는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협력자는 각 학생의 보호자다. 가정의 긴밀한 협조가 있을 때 비로소 학생이 불안 요소 없이 성장할 수 있다. 교사는 학부모 상담 때 서로가 ‘협력 관계’이자 ‘같은 편’임을 강조한다. 학부모와 상담할 때 꼭 해야 할 말을 5가지 꼽아 보았다.
1 “많이 힘드시죠?”
코로나19로 인해 자녀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학부모의 교육 부담이 부쩍 커졌다. 버거움을 느끼는 학부모의 심정을 헤아리고 공감과 위로의 인사를 건네면 소통이 더욱 수월할 수 있다.
2 “초등학생 기간은 변화의 황금기랍니다”
학부모의 주요 고민은 자녀의 자존감, 친구 관계, 공부 습관으로 요약할 수 있다. 대부분의 초등학생이 거치는 고민들이지만 학부모 입장에선 큰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초등학생은 계속 변화하고 발전하는 시기임을 강조해 보호자의 걱정을 덜어 줄 필요가 있다 .
3 “지나친 불안이 아이에게 전이될 수 있어요”
자녀 교육 문제로 유독 불안함을 호소하는 학부모와의 상담에서는 부모의 불안감을 자녀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음을 주지시킨다. 불안감은 더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당연한 감정임을 인정해 주는 한편, 초등학생은 한창 배우고 습득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믿음을 갖고 기다려 주는 시간이 필요함을 알린다.
4 “아이의 장점이 많아서 성장 가능성이 커요”
자녀의 성향이나 습관 때문에 자녀를 걱정하고 자주 꾸중하는 학부모들이 있다. 교사는 학부모가 언급하는 단점에 동조하기보다 자녀가 학교에서 보여 준 장점을 전하며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또한 가정에서 협조한다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점을 강조한다.
5 “믿고 지켜봐 주세요”
뻔한 말 같지만, 교사와 학부모 모두가 늘 기억해야 할 말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어른의 불안과 조바심이 아이들을 힘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에게 ‘기다림’과 ‘믿음’ 그리고 ‘공감’의 중요성을 당부한다. 또 “믿고 지켜봐 달라”는 말은 너무 자주 연락해 오거나 상담 요청을 하는 학부모에게도 할 수 있는 말이다. 근무 외 시간에, 혹은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정도로 연락해 불안을 호소하는 학부모에게는 “아이가 잘하고 있으니 믿음으로 시간을 갖고 지켜봐 달라”는 말로 안심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