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세계에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이 있을 때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즉, 그것이 언어로 규정되기 전까지는 꼼짝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만큼 언어는 우리의 행동에 절대적 힘을 행사한다. 외부의 대상은 우리가 언어로 규정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줄 때 비로소 존재한다.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를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가 한 사람을 만날 때는 그의 인생과 만나는 것이다. 따라서 그를 존중한다 면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이 마땅하다.
아이들은 저마다 특별한 독립적 자아로 존재한다. 교육을 통해 독립적 자아의 성장을 진정으로 돕고 싶다면, 누구든 학습의 구성원 중 1명이 아니라 그들 각자의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 흔히 부르는 ‘학생’이라는 호칭도 그렇다. 학생이란 호칭은 학교에 다니는 많은 학생 중 익명의 1명이라는 뜻이다. 나아가 세상에는 수많은 학생이 존재하니 깨알처럼 많은 학생들 중 1명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름을 불러 주는 것만으로 그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고유한 사람이 된다. 이름을 부른다는 건 하나의 소중한 인격체로 대한다는 것을 알려 주는 행위다.
얼마 전에는 어느 교사가 한 학생을 ‘다문화’라고 부른다는 게 알려져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 명칭에는 무엇보다 차별적인 요소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문화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그 학생은 일반 학생과 다른 아이라는 뜻이 된다. 이처럼 학생을 부르는 호칭이 누구에게는 차별이고, 마음에 상처를 남길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누구나 불러 주길 원하는 이름이 있을 것이다. 꼭 출석부에 기재된 이름이 아니어도 아이의 개성을 가장 긍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고유의 별명을 지어 줄 수도 있고, 또 아이 자신이 불리고 싶은 이름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왕이면 그러한 이름으로 불러 주면 어떨까?
경청은 대화의 표현 가운데 가장 품격 있고 고차원적인 말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행위를 크게 나누면 ‘소극적 듣기’와 ‘적극적 듣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중 경청은 가장 ‘적극적 듣기’에 해당한다. 단순히 말을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말과 말 사이에 배어 있는 감정은 물론 상대의 절박함까지 헤아릴 수 있다.
어떤 목적지를 갈 때 길을 잘못 들어서면 아무리 빨리 뛰어 봐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이처럼 교사에게 경청은 제대로 된 가르침을 위해서 반드시 들어서야 할 올바른 길이다. 교육의 시작이자 과정이고 마지막 결과까지 좌우하는 중요한 소통의 기술이다. 가르치는 직업의 특성 때문인지 몰라도 교사들은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에 훨씬 더 익숙하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의 이야기를 진득하게 듣기보다는 중간에 끼어들어 조언이나 훈계를 하고 싶어 한다. 경청의 첫걸음은 바로 끼어들기의 유혹을 극복하는 데 있다.
교사는 학교에서 매일 접하는 아이들의 일상과 반복되는 유사한 상황을 자주 경험하다 보니 아이들의 이야기를 몇 마디만 들어도 해결 방법이 뻔히 보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경청보다는 대화 중간에 성급하게 끼어들어 해결책을 제시한다거나 상황을 신속하게 결론지으려고 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특히 문제 상황에 놓여 있는 아이가 천천히 말하거나 멈칫거리기를 반복하면 교사는 답답한 마음에 곧바로 끼어들어 다그치기 쉽다. 교사의 입장에서야 서둘러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것이겠지만, 당사 자인 아이 입장에서는 교사의 그러한 모습에 자칫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 버릴 수도 있다.
마음을 닫아 버린 상태에서 아무리 좋은 말을 해 준들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다.
경청과 관련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경청은 자신의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천천히 말하거나 잠시 머뭇거릴 때 무언가를 말하기보다는 학생의 눈을 바라보며 끄덕임으로 반응을 해 주자. 이런 교사의 모습에 학생들은 훨씬 더 안도감을 느끼고, 스스로 해결 방안도 생각해 낼 것이다. 자신의 시간을 선물하고 끼어들기의 유혹을 견딘 교사는 신뢰받는 지도력과 심신의 행복을 얻게 된다. 경청이란 진정한 위로의 힘, 공감과 소통의 원천이 된다.
학생들과의 소통에서 경청과 함께 우리 교사들이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인정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단어 하나로 상황을 정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메신저나 SNS에서 자주 사용하는 인정이라는 뜻의 ‘ㅇㅈ’ 역시 두 글자로 모든 상황을 정리한다.
인정의 진가는 소통에서 발휘된다. 진심으로 상대를 인정함으로써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상대를 인정하면서 나도 인정받는다. 그러나 인정에도 몇 가지 원칙이 있다.
1. 즉시 그리고 구체적으로 인정한다.
2. 결과가 아닌 과정과 노력에 대해 인정한다.
3. 관찰 및 측정 가능한 사실, 새롭게 발견한 사실일수록 효과적이다.
교사에게 인정을 받는 학생은 웃음과 활력이 넘친다.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 중 하나인 인정 욕구는 삶과 발전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사가 사용하는 ‘인정의 기술’은 그 무엇보다 최고의 효과와 최강의 지속력을 갖는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피하세요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교육적 활동에는 피드백이 따라야 한다. 교사와 학생 간 또는 학생과 학생 간에 이루어지는 다양한 피드백은 학생들이 지금보다 한 걸음 더 성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라 할 수 있다. 특히 교사의 피드백은 학생의 배움과 성장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교사의 피드백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무래도 말로 하는 언어적 피드백일 것이다. 교사의 의도는 피드백을 통해 잘못된 부분을 짚어 보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 가도록 돕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교사의 의도와 달리 때론 아이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특히 모욕감을 주는 말은 어떤 경우에도 교사가 학생에게 절대로 하면 안 되는 말, 즉 금기어에 해당한다. 교사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은 다음과 같다.
① 넌 공부 안 해도 좋으니 다른 학생들 방해하지 마라!
학생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다. 공부 방해만 하지 않는 투명 인간으로 생활하라는 뜻이니 어떻게 보면 아예 학교에 나오지 말라는 말보다 더 심한 말일 수 있다.
② 너 때문에 일이 많아진다. 빨리해라!
학생을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말이다. 학생이 당연히 있어야 할 곳이 학교인데, 여기에서 자신이 귀찮은 존재로 취급받는다면 아마 등교 자체가 고역일 것이다.
③ 대체 너의 부모님은 뭘 가르치신 거니?
흔히 상대방과 싸우다가 감정이 격해졌을 때 부모나 자식을 언급하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이 있다. “가족은 건드리지 마라.” 그만큼 수치심과 분노를 일으키는 말이다. 학생들은 수치 심과 분노를 안겨 준 교사에게 배움은커녕 적개심을 갖게 될 것이다.
④ 너 같은 학생은 생전 처음 본다!
학생의 무지나 무능을 꾸짖는 말이다. 하지만 학생은 본래 모르는 것을 배우러 학교에 오는 것이다. 그러니 학생의 무지나 무능은 상당 부분 교사 탓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교사의 책임을 학생에게 떠넘기는 말이 되는 셈이다.
⑤ 정말 너 때문에 못 살겠다.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말이다. 교사나 타인을 괴롭히는 존재라는 말을 들은 학생은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자존감에 상처를 입으면 모든 면에 위축되기 쉽다. 이런 학생에게 적극적인 학교생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⑥ 넌 정말 구제 불능이구나!
변화나 발전 가능성을 부정하는 말이다. 교사가 학생의 변화나 발전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곧 교육을 포기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교사가 학생에게 ‘사망 선고’를 내리는 것과 다름없다.
긍정어가 아이의 미래를 바꿉니다
학생들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살펴보았으니, 교사가 학생들에게 해 주어야 할 좋은 말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긍정어, 즉 아름다운 말의 공통점은 바로 칭찬과 격려, 허용과 인정 속에 학생들의 미래 발전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① 틀렸어도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 다시 한 번 해 보자!
② 너는 정말 멋지다!
③ 세상의 여러 문 중 어느 하나는 너를 위해 열리는 문이란다.
④ 나는 네가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⑤ 과거가 미래를 말해 줄 수 없다. 자신이 반드시 할 수 있다고 믿어라!
⑥ 이 학생이 당신의 자녀이기는 하지만 저의 자식이기도 합니다.
⑦ 교실은 잘못을 용납해 주는 곳이란다.
⑧ 실패란 없다. 단지 잠시 멈춘 성공이 있을 뿐.
⑨ 배움에는 늦음을 두려워 말고, 인재가 되는 데는 낮음을 두려워 말라.
⑩ 네가 나를 한순간 미워하도록 할지언정, 나를 한평생 원망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여러 긍정의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교사의 말하기는 때론 기적 같은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더불어 교사의 말에 담긴 가르침은 아이들의 인생에서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아 있는 최고의 말로 기억될 수 있다.
힘들고 바쁜 일과 중에서도 더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자기 계발에 힘쓰는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먼 훗날 우리 아이들이 한번쯤 떠올리며 위로를 받고 용기와 힘을 낼 수 있도록, 아름다운 언어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더 많아 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