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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talk] 열정과 냉정 사이

호칭의 굴레


나는 학교의 부장 교사들을 ‘부장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내가 ‘부장님’이란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 까닭은 여러 가지다. 

가장 큰 이유는 이미 위계 서열로 가득한 사회에 또 하나의 불필요한 층위를 더하고 싶지 않아서다.


글 김현희(대전 상지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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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 교직원 사이의 호칭 문제는 끝없는 논란을 낳았다. 아래와 같은 내용의 전체 메시지를 몇 번이나 받기도 했다. 

“앞으로 행정실의 A님은 꼭 실장님, B님은 주무관님이라 부르세요. 선생님이나 주사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학교 지킴이님들은 선생님이라고 통일해서 부르세요.”

‘엄연히 다른 직업이니 다른 호칭을 쓰자’, ‘학교에서 일하면 모두 선생님이라고 부르자’ 등 호칭에 대한 갑론을박이 매번 일어났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우스운 촌극 같지만, 현장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자존심이 걸린 중대한 문제였다.

 호칭 논란은 사실 한국 사회 전반의 뿌리 깊은 문제다. 모 칼럼니스트가 현직 국회의원을 이름 석 자로 지칭했다가 명예 훼손으로 고소당한 사건, 한 국회의원이 다른 국회의원을 ‘당신’이라 칭해 싸움이 벌어진 사건 등은 유명하다. 또 최근 모 인권 단체가 학교 밖에서 학생들을 ‘군, 양’으로 부르지 말고 ‘님, 씨’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가 학생이 고객이냐는 비판을 받았다. ‘아줌마, 아저씨’는 대표적이고 흔한 호칭이다. 하지만 ‘이보세요, 아줌마!’란 말은 곧장 ‘싸우자!’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최근에는 식당이나 상점에서도 ‘이모님, 사장님, 선생님’이 예의 있고 안전한 호칭이라고 보는 추세다.

 정확한 통계 결과는 없지만 전 세계에서 호칭 시비가 가장 자주 일어나는 나라는 한국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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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호칭 체계의 가장 큰 문제는 낮은 효율성이다. 내가 학교에서 ‘부장님’ 호칭을 쓰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비효율성 때문이다. 어차피 모두 교사인데 교사, 보직 교사를 굳이 구분해 불러야 할까? 지난해 부장 교사였던 교사가 올해 보직이 없다면 계속 부장님이라 불러야 할까, 선생님이라 불러야 할까? 이와 같은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소모적이다.
 당위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 보직 교사 중 다수가 업무 부장이다. 하지만 교육 기관에서 교사들끼리 (심지어 교육 활동도 아닌) 업무를 중심으로 호칭을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어떤 교사들은 원로 교사를 ‘부장님’이라고 부른다. 또 애초 원로 교사를 구분할 필요와 원로의 기준은 무엇이며, 원로 교사로 구분된 당사자들은 이를 반기는가? 어째서 ‘선생님’이란 호칭이 충분한 예우가 되지 못하는가? 이처럼 복잡한 호칭 체계 자체가 여러 문제를 발생시키는 각종 모순의 각축장이다.
 호칭 체계가 복잡할수록 조직의 수직적 풍토는 견고해진다. 학교는 직급이 세밀하지 않아서 수평적인 풍토를 만들기 좋은 환경이다. 그런데도 같은 직급의 교사들끼리 굳이 ‘부장’과 ‘교사’를 나누면 보직과 나이에 따라 불필요한 위계가 생긴다. 어떤 관리자는 누군가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자 불같이 화를 내며 반드시 ‘교장(감) 선생님’이라 부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공적인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나는 ‘선생님’이 충분한 존칭이라 생각한다. 공기관의 구성원들이 한 개인의 낮은 자존감을 보상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뿐더러, 학교라는 교육 기관에 필요한 건 소통과 협력이지 위계와 억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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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이 복잡할수록 우리는 타인에게 고려해야 할 사항, 들여야 할 에너지가 많아진다. 나이, 성별, 직위, 성향, 주변에 있는 제삼자의 반응 등 다양한 요소를 다층적 맥락에서 순간적으로 계산해야 한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나는 오히려 외국 여행을 할 때 낯선 타인과의 교류가 더 쉬웠다. 버스에서 눈만 마주쳐도 상대가 편하게 말을 걸며 친절을 베풀어서 개방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호칭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모르는 이에게 말을 걸 때 ‘어머님이라 불러야 하나? 어르신이라고 부르면 실례인가? 직급이 뭐더라?’따위의 고민이나 감정 노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당연시되던 환경을 다른 각도로 성찰하고 싶다면 다양한 문화권의 양상을 살펴보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영어권 국가들의 호칭은 한국에 비해 훨씬 단순하다. 낯선 타인을 부를 때 보편적인 호칭은 써(sir), 맴(ma’am) 정도다.
반면 우리는 고객님, 손님, 사장님, 사모님, 언니, 어머님, 어르신 등 매우 복잡하다. 또한, 영어권 국가에서는 대부분 상대의 이름을 부른다. 이름 부르기를 ‘하대 혹은 맞먹는’ 호칭쯤으로 인식하는 한국과 대조적이다.
 당연히 교사들끼리도 서로를 직급으로 호칭하지 않는다. 물론 문화는 상대적이고 각자의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위계 서열 측면에서만큼은 한국의 호칭 문화가 대단히 수직적이다. 또 이름 부르기를 꺼리다 보니 사람을 개성을 가진 하나의 인격으로 보기보다 고객, 상급자, 동서 등으로 나눠서 서열을 매기고 대상화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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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칭은 권력, 인정, 자존의 각축장이다. 한국은 호칭으로 인한 불화가 유독 잦다. 또 그럴 때마다 특정 개인의 인품과 정서 상태만 공론화한다. 최근에는 ‘당신’ 호칭 논란으로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질문들은 빠진 느낌이다.
 한국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호칭에 집착할까? ‘내가 누구인지’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지나치게 신경 쓰고 있는 건 아닐까? 복잡한 호칭 체계가 수평적인 관계와 소통을 가로막는 주범은 아닐까? 한 단면만으로 사람을 판단해 버리는 경향을 강화하고 있지는 않을까?
특히 교사라면 다음과 같은 고민도 이어 가야 한다. 적어도 가시적 차원에서 학교 민주화는 이뤄졌다. 그런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교직원 간 갑질 논란, 호칭 시비, 권위주의적 풍토의 원인은 무엇일까? 거시적 민주화 이후 우리는 어떤 학교를 만들고, 어떤 교육을 해야 할까? 수평적인 관계를 맺고,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위해 긴장과 성찰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주제들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들이 우리 교사들에게 호칭의 정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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