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밖 수업도 명량하게
현장 체험 학습과 체육 대회는 당연히 방역 수칙을 잘 지키자는 전제 조건이 붙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코까지 마스크를 잘 쓰고, 각 학년을 3개 팀으로 나누어 인원을 최소화한 뒤 행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가르치는 학생 중 한 명인 민호(가명)는 시간에 쫓겨 미처 다 못 보고 온 유튜브 영상의 내용을 중얼거리며 1교시가 시작되기 직전에 아슬아슬 등교하는 지각생이다. 그러나 현장 체험 학습을 가는 날은 누구보다 일찍 등교했다. 평소보다 무려 30분이나 일찍 학교에 온 것을 보면 현장 체험 학습을 많이 기다렸던 것 같다.
민호는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다. 가끔 기분이 내키지 않거나 의사 전달이 잘되지 않으면 마음이 답답한지 도전적인 행동을 종종하곤 한다. 한창 신이 날 때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뛰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현장 체험 학습 날에는 다른 학년의 수업이 있는 나 대신 특수 교육 지도사(전라북도에서는 특수 교육 보조 인력을 ‘특수 교육 지도사’라고 한다)가 동행하기로 했다.
민호가 간 현장 체험 학습 장소는 실내 체험형 놀이터였다. 평소 활동성 넘치는 우리 민호가 물 만난 고기처럼 얼마나 좋아할지… 그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체험 학습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모든 학생이 마스크도 잘 썼고, 차례도 잘 지켜 가며 즐겁게 시설을 이용했다. 민호도 특수 교육 지도사와 함께 공 던지기, 4D체험 등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체험했다.
민호도 할 수 있어!
그런데 그때였다. 민호가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민호의 손가락 끝을 따라가 보니 안전줄에 의지해 하늘 징검다리를 건너거나 로프를 잡고 건너는 스릴 만점의 체험 코스였다. 친구들이 체험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민호가 자기도 하고 싶다며 의사 표현을 한 것이다. 특수 교육 지도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민 호가 하겠다고 한 체험은 한번 시작하면 완주할 때까지 시작점으로 돌아올 수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먹은 것은 기어코 해야 하는 민호의 성정이 특수 교육 지도사와 시설 관계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시설 관계자는 원래 이 체험은 장애인들은 시키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민호는 안전줄에 의지한 채 제 손가락이 가리켰던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처음 몇 발자국을 떼더니 생각보다 무서웠는지 한참을 한자리에 있었다. 담임 선생님과 특수 교육 지도사 그리고 친구들이 목이 터지도록 외치기 시작했다.
“민호야, 할 수 있어. 앞으로 더 가 보자!”
응원에 힘을 얻었는지 민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은 5분도 채 걸리지 않을 체험이 민호에게는 10분 이상 걸리는 체험이 되었다. 결국 민호는 버겁게 느끼던 스릴 넘치는 활동들을 전부 클리어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모두가 민호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장애인은 이 체험을 시키지 않는다’는 시설 운영의 룰과 편견을 깨고 우리 민호가 해냈다. 장애인이라고 무조건 ‘할 수 없다’는 것은 편견이다. 다만 조금 더 시간이 걸리고, 조금 더 기다려 주면 될 뿐이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가진 ‘장애’를 이유로 얼마나 많은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도전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장애인은 영영 ‘못하는 존재’로 남게 된다. 그러나 민 호가 천천히 그리고 제 속도로 모든 미션을 완수했듯이 장애인도 조금의 시간이 더 제공되고 방법을 조금 다르게 제공해 주면 충분히 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우리 아이들을 만나면서 배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살이 방법이다.
마음만은 1등이야
민호는 여느 또래와 같이 체육을 좋아한다. 체육 대회 날에는 마음이 많이 들떠 보였다. 차례차례 줄을 서고, 준비 운동을 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체육 대회를 즐길 생각에 신나 보였다. 드디어 체육 대회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에 많은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민호도 예외는 아니었다.
체육 대회는 총 3팀으로 나뉘어서 진행되었다. 2인3각 달리기, 이어달리기 등 여러 가지 활동에 우리 민호 이름도 당당히 올라가 있는 것을 보니 왠지 모를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아이들의 응원 소리와 경기 열기에 선선해진 가을 날씨가 무색할 만큼 후끈해졌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민호가 속한 조가 모든 게임에서 지는 것이었다. 제 마음대로 활동하고 싶은 민호를 달래가며 경기를 해야 하니 아이들도 선생님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패배의 중심에 민호가 있는 것 같았다.
민호네 조가 게임에서 계속 지는 것이 민호 탓인 것 같아서 나는 이내 다른 학생들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불편한 내 마음이 얼굴에 다 드러났을까? 민호네 조원들이 경기를 마치고 돌아온 민호에게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민호야, 정말 잘했어.”
“선생님, 민호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우리 팀이 져도 괜찮아요. 그런데 민호를 배려하지 않고 경기한 상대 팀이 너무 매정해요.”
아이들은 하나같이 민호의 경기 참여와 완주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민호 때문에 자신들이 계속 꼴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규칙 지키기를 고사하고 제멋대로 뛰어다닌 민호 때문이 아니라 민호를 배려하지 않고 경기에 이기려고만 하는 상대 팀의 무심함에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아, 아이들에게 또 배웠다. 장애를 장애로 보지 않고, 친구가 가진 특성 중 하나로 보는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과 배려심이 불편해진 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일
민호네 반 아이들이 이렇게 민호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민호 담임 선생님의 역할이 컸다. 평소 민호 담임 선생님은 ‘민호도 우리 반이다’라는 마음으로 학급 내 모든 활동에 민호를 참여시켰다. 소근육 힘이 약한 민호를 위해 쉬는 시간이면 실 꿰기, 젓가락 연습을 시켰고, 감각 활동을 위해 슬라임, 팝잇 등의 교구를 교실에 구비해 두었다. 그리고 그 교구들로 활동하며 언제든 또래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지도했다. 또한 민호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잘 했을 때 또래들 앞에서 무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민호가 잘못했을 때 적당히 꾸짖기도 했다. 즉, 민호에게 자폐성 장애가 있다고 특별히 대하거나 특별히 배제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담임 선생님의 ‘민호도 우리 반이다’라는 마음이 민호네 반 아이들의 마음에 닿았고, 선생님의 진심을 아이들이 조금씩 닮아 가게 된 것이다.
가끔 몇몇 통합 학급 선생님들께 “○○는 우리 반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특수 학급에서 개별 수업을 하면 ○○한테 좀 더 유익할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듣는다. 그럴 때마다 서로 다른 아이들이 한 교실에서 어우러지도록 최선의 지원을 다했는지 묻고 싶다. 정말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분리해서 교육하는 것이 모든 아이들에게 최선의 교육 방법이라 생각하는지도 함께 묻고 싶다. 통합 교육은 저마다의 세계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만나는 일이다. 서로 다른 모든 어린이들의 세계가 인정되고 존중되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진정한 통합 교육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