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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속 talk]

글로벌 에듀|인공지능 교육의 빛과 그림자


교과서와 AI 튜터가 혼재된 교육은 선진국에선 이미 효과가 검증된 수업 방식이다. 공교육과 사교육이 사과 쪼개듯 이분화된 국내와 달리, 선진국에선 정부가 나서서 사교육 AI 기술을 공교육 안으로 적극 도입 중이다. 단지 공부뿐만 아니라 AI가 학생의 표정을 감지해 기쁨·우울·화남 등 심리 상태까지 분석해 감정을 돌봐 주는 프로그램도 출시되고 있다.


글 박상현(조선일보 사회정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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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과목 일대일 과외 선생님의 출현
“인공지능(AI) 튜터는 학생 각자의 학습 호흡, ‘휴먼 페이스(Human Pace)’에 최적화된 모델이다. 빠르다고 칭찬하거나 느리다고 채찍질하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속도로 달리면 교육과정을 완수할 수 있다.”
미국 텍사스주(州) 소재 공립중학교 주빌리 아카데미 교사 세라 스태들러씨는 학교에서 사용 중인 AI 수학 튜터 ‘매시아’의 장점을 이같이 설명했다. 이 학교에선 정규 수업이 끝나면 학생 각자 태블릿을 꺼내 매시아를 켜고 방과 후 학습을 시작한다. 25명 안팎의 학생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지만 누군가는 방정식, 누군가는 기하학 문제를 푼다. 담임 교사는 매시아가 전송하는 학생별 진도율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업 성취도를 가늠하고, 학생마다 다른 숙제를 내준다. AI 튜터의 도움을 받아 사실상 일대일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인공지능은 학교 현장을 천천히 그러나 송두리째 변화시키고 있다. 교실은 태생적으로 교사 한 명이 개성, 지능, 관심사가 다른 수십 명의 학생을 돌봐야 하는 물리적 한계에 직면한다. 정원이 25명인 반의 담임교사가 학생에게 균등한 관심을 배분해도 인당 4%밖에 안 된다. 그런데 AI는 4%를 100%로 만들어 준다. 학생이 몇 명이든 AI가 분석한 학생별 데이터를 통해 누가 어느 지점을 달리고 있는지 교사가 점검할 수 있다. 학생들 역시 전 과목에 일대일 과외 선생님을 한 명씩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I의 성과는 상향 평준화된 학업 성취도
교육 현장에서 인공지능의 성과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부분은 단연 학업 성취도다. 2017년 가을부터 ‘매시아’를 도입한 주빌리 아카데미에선 학생들의 수학 과목 통과율이 2017년 68%에서 2019년 92%로 24%나 올랐다. 그해 학기말 시험에서도 같은 텍사스주 교육구 안에서 주빌리 아카데미 학생들의 평균 수학 성적이 가장 높았다. 10명 가운데 6.8명만 성공하던 수학 과목 완주가 불과 2년 새 10명 중 9.2명으로 대폭 늘어난 것이다. 매시아를 써 본 학생들 사이에선 “모르는 개념도 두 번 세 번 AI가 이해시켜 주니 공부에 흥미가 생겼다”는 평가가 많았다고 한다. 교실도 교사도 그대로인데 AI 튜터라는 변수만 더하니 학교 전체의 학업 성취도가 상향 평준화된 것이다.

 

영국 교육부는 작년부터 AI 수학 튜터 ‘서드 스페이스 러닝(TSL)’을 ‘국가 과외 프로그램(NTP)’으로 선정, 수업료 중 75%를 지원하고 있다. TSL은 AI와 화상으로 하는 사교육 수업이 혼재된 시스템이다. 프로그램에 탑재된 AI는 학생의 문제 풀이 과정을 분석해 개념 이해가 부족하거나 학년이 다르더라도 다시 짚고 가야 하는 부분을 발굴한다. 이 내용은 TSL에 소속된 강사에게 전달돼 매주 한 번 45분간 온라인 과외 수업을 하는 데 활용된다. 비용은 한 학기 10만 원 안팎. 작년 한 해 동안 TSL을 사용한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아지자 영국 정부는 올해 초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교육 소외 지역 초·중학생 1만 5,800명에게 이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했다. 지난 2월 발표된 TSL 보고서에 따르면, AI 수업을 받은 학생 가운데 90%가 그동안 배운 개념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보였고, 기존에 ‘수학 과목에 자신감이 떨어진다’고 답했던 학생 중 70%가 TSL 학습 이후 “자신감이 생겼다”고 답했다.


AI 튜터 매커니즘은 ‘정답을 맞혔느냐’를 보지 않고, ‘올바른 과정을 따라 정답을 맞혔느냐’를 본다. 예컨대 100점 맞은 두 학생 중 한 명은 1문제를 찍어서 맞혔고, 다른 한 명은 전부 알고 맞혔다면 AI는 두 사람의 학업 성취도를 다르게 해석한다. 기존 채점 시스템에선 발견할 수 없었던 부분을 AI는 알아채는 것이다. 이 경우 AI는 1문제를 찍은 학생이 다음엔 알고 맞힐 수 있도록 학습 계획을 세워 준다. 결과적으로 두 학생의 학업 성취도는 상향 평준화되는 것이다. AI는 교사에게 학생마다 어떤 개념, 어떤 챕터에 대한 학습이 더 필요한지 정확한 데이터를 준다. 교사는 이를 통해 짧은 시간에 여러 학생에게 핀포인트 수업을 해 줄 수 있다. TSL의 경우 수업 도중 학생이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감지하면 해당 내용에 밑줄을 쳐 교사에게 다시 설명하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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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와 AI는 함께할 수 있을까?

교육 현장에 AI 도입이 가속화되면 교사의 역할도 달라진다. 전문가들은 향후 공교육 현장에서 교사와 AI의 역할 변화에 대해 크게 3단계를 거칠 것으로 전망한다.
첫째는 AI가 교사 업무를 보조하는 단계, 둘째는 교사와 AI가 협업하는 단계, 셋째는 학습은 AI가 맡고 정서적 돌봄과 사회화는 교사가 맡는 단계다. AI가 각 학생에게 부합하는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사이 교사들은 성장기 학생들의 인격 형성 등 정서적 돌봄에 더 역량을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교사와 AI가 협업해 수업하는 이른바 ‘혼합형 수업’ 방식은 미국에선 이미 성적 향상 효과가 증명됐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는 2014년 미국 7개 주 147개 중·고교에 재학 중인 1만 8,700명을 대상으로 대수학 과목에서 종이 교과서로만 공부한 집단과 교과서와 매시아를 혼합해 공부한 집단의 성적을 비교했다. 그 결과 혼합형 수업을 받은 집단이 1등급가량 높은 성적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가 정규 수업 때 진도를 나가고, AI가 방과 후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며, AI가 산출한 데이터를 보고 다시 교사가 적절한 숙제를 내준 경우 효과가 가장 좋았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미래의 지식 전달 기능은 AI 몫으로 대폭 이전될 거란 전망이 많다. AI가 완전한 ‘맞춤형 교육’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2019년 발표한 ‘인공지능 시대에 교육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라는 보고서에서 “앞으로 학생들은 초몰입형 디지털 교육에 노출될 것이며, AI를 통해 최적 학습 경로에 빠르고 효율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교사는 AI 소프트웨어가 현장에서 잘 구동되도록 컨트롤하는 능력을 요구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AI 혁신은 교사가 학생들 개개인의 ‘맞춤형 교육’을 이뤄 내는 데 귀중한 자원이 될 수 있다”며 “미래 교육은 실시간 데이터 사용, 개인화된 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과 기존 대면 학습의 전략적 통합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교사의 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부분, 특히 학생들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학생들을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시키는 역할은 AI의 학습 기능이 부각될수록 오히려 교사들에게 강하게 요구될 것이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오브 런던(UCL) 로즈 러킨 지식연구소 교수는 “AI가 교실에서 좋은 도구로 활용될 수 있지만 인간적 도움과 사회적 능력이 필요한 순간에는 결국 교사가 나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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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교육에는 감시와 통제라는 그늘이 존재한다
AI 기술은 인간의 감정이나 정서 영역까지 손을 뻗고 있다. 학생들이 학업 도중 느끼는 감정을 잡아내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학습 효율을 높인다는 상품도 출시됐다. 그러나 성적 향상을 명분 삼아 개개인의 감정까지 감시하고 공부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중국 저장성 진화시의 한 초등학교에선 2019년 학생들의 뇌에서 나오는 전기 신호를 측정했다. 이른바 ‘집중력 점수’를 산출하기 위해서다. 얼마나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지 전기 신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시간으로 집계된 이 점수 데이터는 교사의 컴퓨터로 이동, 집중력이 떨어져 있거나 정신이 산만한 학생이 발견되면 교사가 이를 제지하는 용도로 쓰였다. 학교 측은 이 장치를 사용한 학급에서 단기간 유의미한 성적 상승 효과가 있었다고 밝혔지만, “아이들의 뇌파까지 감시하려고 한다”는 비판이 일면서 사용을 중단했다. 홍콩의 한 스타트업이 만든 ‘포 리틀 트리’라는 제품은 학생들이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통해 시험을 보거나 문제를 풀 때 AI가 카메라로 학생의 얼굴 근육 움직임을 분석, 행복·슬픔·분노·놀람 등 감정을 파악해 이 감정 데이터를 성적 향상에 이용하고 있다. AI기술이 교육의 어떤 부분까지 침투할 수 있는지 그 적정선을 찾는 작업도 한동안 다뤄야 할 주제다.

AI 기술은 국내 공교육에도 속속 도입되고 있다. 서울사대부고의 사례는 눈여겨볼만하다. 지난 5월 공교육 기관으로는 처음으로 민간 기업과 협업해 AI 수학 튜터 개발 과정에 직접 참여했고, 이를 정규 수업에 도입했다. 학생들에게 매일 맞춤형 숙제가 나가고, 풀이 과정을 적어 태블릿에 업로드하면 AI가 학업 성취도를 판단해 담당 교사에게 알려 주는 식이다. 핀란드의 빌레처럼 이 학교 교사들이 직접 만든 연습 문제가 AI 튜터를 채우고 있다. 올 5~9월 1~2학년 20명을 대상으로 AI 튜터가 시범 운영됐고, 현재 학습 효과에 대한 데이터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 대상 학생 중엔 수학 과목에서 하위권에 있다가 학업 성적이 학년 평균 이상으로 오른 학생들도 있었다. AI 튜터는 서울사대부고를 시작으로 서울사대부초, 부속중, 부속여중까지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효과가 인증되면 더 많은 학교로 AI 열풍이 번질 것으로 보인다. 조영달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선진국들은 이미 AI 기술을 활용해 과학적·체계적으로 학생들을 관리하는 모델을 구축했다”며 “인공지능을 통해 공교육에서도 맞춤형 교육이 이루어져야만 앞으로도 한국이 세계적 ‘교육 강국’의 타이틀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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