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한 곡,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원치수 선생님도 그중 한 명이다. 대학교 2학년 때, 친한 형이 추천한 뮤지컬 넘버 한 곡으로 뮤지컬에 빠졌다. 노래를 듣는 순간, 또 다른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고 무대를 보기도 전에 한 편의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완성했다.
얼마 뒤, 선생님은 부푼 기대를 안고 그 뮤지컬 넘버의 공연을 관람했다. 그런데 막상 접한 무대는 그의 상상 속 세계와 많이 달라 크게 실망했다. 이를 계기로 “내가 직접 무대에 서서 내가 만든 세상을 표현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듬해,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뮤지컬 클래스의 수강 기회를 얻었다. 이때 뮤지컬을 처음 배우고 총 3편의 공연에 배우와 조연출로 참여했다.
몸치에 내향적인 성격이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강점인 이야기 창작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연기보다는 연출쪽이 자신에게 더 잘 맞는다는 것도 알았다.
원치수 선생님이 느낀 뮤지컬의 매력은 이야기와 음악의 자연스러운 만남에 있다. 질감이 다른 두 가지 장르가 하나로 만나 빚어내는 풍부한 양감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러나 뮤지컬로 아예 진로를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교사를 꿈꿔 왔기 때문이다.
그저 취미로만 남을 줄 알았던 뮤지컬이 교직과 함께 선생님의 운명이 된 건 뮤지컬에서 교육적 가치를 발견하면서부터였다. 여러 사람이 각자 자신의 강점을 내세우고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며 함께 만들어 가는 장르라는 점에서, 이야기와 음악은 수만 가지로 변주될 수 있다는 점에서 뮤지컬을 교육에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선구자’가 있었다. 그는 곧바로 교육뮤지컬의 영역을 개척한 박찬수 선생님(강원 샘마루초)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박찬수 선생님은 의욕 넘치는 교대생의 방문에 반가워하며 기꺼이 그의 교육뮤지컬 멘토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10년 후, 뮤지컬 무대에 섰던 대학생은 이제 6년 차 ‘교육뮤지컬 전문 교사’로 교단에 서고 있다. 그간 뮤지컬 수업을 연구하고 실천해 온 노력의 결실로 <세상에서 가장 쉬운 뮤지컬 수업>도 출간했다 . 교육뮤지컬에 한걸음 다가서고 싶은 교사를 타깃으로 쓴 책이다. 원치수 선생님은 교육뮤지컬을 이렇게 정의한다.
“학생이 뮤지컬 ‘배우’가 되기를 기대하는 교육이 아니라 뮤지컬로 ‘배우는’ 교육입니다.”
원치수 선생님이 생각하는 교육뮤지컬의 키워드는 ‘융합’이다. 장르 그 자체로 인문, 예술, 기술 등이 융합되어 있고 연출, 안무, 의상, 조명 등 작품을 이루는 요소 또한 복합적이다. 교육뮤지컬은 국어, 음악, 체육 등 여러 교과가 융합되고 학생, 교사, 학교, 지역 사회 등이 융합된다.
“교실에서 뮤지컬을 활용한 수업을 하면 연기 잘하고 춤과 노래에 재능 있는 학생만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러나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작품의 이야기를 만들고 대본을 엮고 음악을 만드는 일련의 모든 활동에 학생 모두가 참여해요. 주인공이 정해진 활동이 아닙니다. 모두가 수업의 주인공이 되는 활동이죠.”
배영초등학교에서는 전교생이 뮤지컬 수업을 한다. 원치수 선생님은 각 학년의 교육 과정에 맞는 교육뮤지컬의 모델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선생님들에게 안내하는 역할을 해 왔다. 어느덧 시행 3년 차에 접어들어 교사도 학생도 능숙하게 참여한다.
1~2학년은 음악과 극 활동이 어우러진 놀이 형태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3~4학년은 거주하는 지역과 주민을 소재로 주변을 관찰하는 활동에 주력한다. 5~6학년은 역사, 환경, 인권 등 국가와 세계로 영역을 확장한 뮤지컬 수업을 한다. ‘나’로 시작해 차츰 시야를 넓혀 가는 과정이다. 수업 형태는 크게 감상, 창작, 공연 중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세 가지를 혼합할 수도 있다.
원치수 선생님은 교육뮤지컬은 학생의 배움을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그 자체로 완전한 목적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또한 학생이 ‘나는 무엇을 잘하고 또 좋아하는지’를 짚어 보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선생님 본인이 뮤지컬을 통해 ‘자신을 찾는 과정’을 거친 산증인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다소 딱딱하고 어렵게 느끼는 역사와 환경에 대한 주제도 뮤지컬과 연계하면 아이들의 감정이 실린다. 한국 전쟁의 참상을 이야기로 풀고 기후 변화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연기하면서 아이들은 교실 밖 세상을 배워 간다.
학생들이 창작한 뮤지컬은 무대가 아닌 책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른바 ‘뮤지컬 그림책’이다. 아이들이 뮤지컬 대본과 노래 가사를 직접 쓰고 장면들을 그려 넣었으며, 지면에 QR코드를 넣어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전 세계 사람들도 함께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영문도 수록했다. 뮤지컬을 또 다른 장르와 연계한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저는 교육뮤지컬 연구의 영감을 아이들에게 얻어요. 자신들이 만든 작품으로 성취감을 느끼는 아이들을 보면서 행복하고요. 그래서 커튼콜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모든 학생이 박수와 환호성을 받는 시간이니까요.”
인생이 뮤지컬이라면 기승전결 중 이제 ‘기’가 끝난 느낌이라는 원치수 선생님. 교육과 예술의 따뜻한 만남을 주선하는 그의 뮤지컬이 해피 엔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