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talk]
명사의 교실ㅣ말썽꾸러기는 문제아가 아니라 귀염둥이입니다
차승민 선생님의 교실에는 레드카드, 옐로카드, 블루카드가 있다. 학교생활과 친구 관계 등 태도를 평가하는 카드로, 학업 능력이나 성취와는 무관하다. 레드카드는 ‘위험’, 옐로카드는 ‘경고’, 블루카드는 ‘칭찬’의 뜻을 지녔다.
평가는 선생님이 하지만 아무 때나 카드를 남발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떤 카드를 받고 있는지 궁금한 학생에게는 알려 주는데, 여기에는 원칙이 있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학급 전체에 공개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 알기 위해 용기를 낸다. 자신이 잘못한 점이 있어 껄끄러웠던 아이는 오히려 시원하게 인정하는 계기가 되고 칭찬이 필요했던 아이에게는 보상이 된다. 아이들에게 ‘대마왕’이라고 불리는 차승민 선생님의 교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너는 좋은 아이니, 나쁜 아이니?
직접 만난 차승민 선생님은 ‘덩치도 크고 인상도 험상궂어’ 아이들에게 ‘대마왕’이라 불린다는 저서 속 묘사와 달리 미소로 가득한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선생님, 인상이 정말 좋으신데요!” 하고 인사를 건네자 “기자님이 좋은 사람이라서 좋게 보이는 거지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선생님의 독자라면 으레 건네는 인사말로만 들리진 않을 것이다.
“너는 좋은 아이니, 나쁜 아이니?” 귀염둥이들이 말썽을 피우면 선생님이 던지는 단골 질문이다. 대부분의 아이는 대답을 주저한다. 잘못을 했으니 좋은 아이라고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나쁜 아이라고 인정하기도 싫어서다. 그는 그런 아이들에게 이렇게 타이른다.
“좋은 아이는 스스로를 좋은 아이라고 생각해. 자신이 좋은 아이란 걸 알기 때문에 좋은 말과 행동을 하지. 하지만 나쁜 말과 행동을 했다고 나쁜 아이가 되는 건 아니야. 그땐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돼.”
슬럼프에 빠진 교사보다 미성숙한 아이가 더 힘들다
좋은 교사의 기준은 무엇일까. 차승민 선생님은 기본을 강조한다.
“교육의 목표는 하나입니다. 바람직한 민주 시민으로 자라도록 기초와 기본을 닦아 주는 것. 인성을 바탕으로 지식을 전수해 주는 것. 아이의 변화는 가르치는 중에는 잘 드러나지 않아요. 그래서 교사는 힘들죠. 그래도 받아들여야 해요.”
교사가 꿈이라는 제자들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이 교실에서 가장 말썽꾸러기인 친구를 사랑할 수 있어야 교사를 할 수 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교직 생활, 언뜻 부정적으로 들리는 선생님의 말 속에는 현실을 직시하고 교사의 소명을 다하고자 하는 진심이 담겨 있다.
“슬럼프에 빠지면 교사인 나보다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는 미성숙한 아이가 더 힘들고, 그것을 지켜보는 부모는 더욱더 힘들다는 사실을 인지합니다. 제겐 미성숙한 아이를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고요. 부모님에게는 아이를 조건 없이 믿으시라, 부모도 성장해야 한다고 말씀드려요.”
설명이 아닌 질문, 설득이 아닌 선택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답을 제시하고 설득하기보다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선택하게 한다. 대신 선택지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준다.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상황을 인지하도록 하고 판단 과정에서 옳고 그름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다. 물론 시간은 걸린다. 때론 진흙탕 같은 과정을 겪기도 한다.
“문제를 일으키면 그에 따른 대가를 알게 합니다. 어른과 다르지 않죠. 대신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고 기다려 줍니다. 아이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후회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좋은 사람 옆에 좋은 사람. 그리고 좋은 교사 곁에 좋은 학생. 이 믿음으로 25년째 교직 생활을 해 왔다. 반 아이들에게도 자신 있게 말한다.
“난 우주 최고의 선생님이고 좋은 사람이야. 내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좋은 아이라고 생각하지.”
아이들은 선생님의 ‘자랑질’에 까르르 웃다가도 '나는 좋은 아이인가' 되새겨 본다.
덕질도 교육이 됩니다
그렇다면 교사만 지우개처럼 닳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차승민 선생님은 교육 목표만 뚜렷하다면 그 과정은 얼마든지 다양해질 수 있기에 슬럼프가 와도 대처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강조한다.
차승민 선생님이 펴낸 초등 교육 관련 책들 중에는 영화, 미술, 여행 등 예술·인문 분야와 연계한 교육서가 여러 권이다. ‘영화교육 전문가’로도 이름난 선생님은 <영화를 함께 보면 아이의 숨은 마음이 보인다>, <아이의 마음을 읽는 영화 수업> 등의 책을 썼다. 어릴 때부터 영화 감상이 취미였던 차승민 선생님은 교사 역할에 대한 고민이 깊어 가던 교직 4년차에 교육용으로 적합한 영화를 선정, 영화교육 과정을 체계화했다.
영상에 익숙한 아이들은 어느 때보다 집중해 영화를 봤고 이후 역할극, 토론, 감상문 쓰기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표현력과 공감 능력, 의사소통 능력이 크게 향상됨을 느꼈다.
“덕질이 업이 된다고 하죠. 오랜 세월 근무하는 교육 현장에서 성과를 내려면 나만의 화수분이 필요합니다. 예술은 교육과 연계하기 좋은 분야죠. 저는 잘 가르치기 위해 취미인 영화 감상을 교육적으로 차용했습니다. 그것이 확장되어 미술과 여행으로 뻗어 갔고요.”
인고의 시간을 견디는 하나의 목표
선생님은 25년의 교직 생활을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고사성어로 표현한다. 가르치고 배우면서 함께 성장한다는 뜻이다. 아이들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말썽꾸러기를 귀염둥이라고 불렀고, 매 순간에 충실하기 위해 ‘내일’에 집착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실수와 실패는 일상이므로 그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는 것은 교사의 당연한 직무라 여겨 왔다. 다만 그 과정은 언제나 인내를 동반하기에 경륜이 쌓인 지금도 결코 쉽지 않다.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의 마음은 다 같아요. 지금 이 순간,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그게 중요하죠. 힘들어하는 교사들이 많습니다. 코로나19는 물론이고 경직된 제도와 법령, 단편적인 인식들로 교단이 위축되어 안타까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이 쓰러지지 않는 까닭은 아이들을 성장시킨다는 하나의 목표, 그 불씨가 아직 뜨겁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체력이 많이 약해졌고 고독은 시시때때로 찾아온다고 했다. 그런데도 아이들을 마주하면 정신이 든다. 스스로 ‘좋은 교사’를 선택했고 기꺼이 ‘귀염둥이’들을 책임지기로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