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일상인 북유럽 사람들
북유럽에서는 자녀가 어릴 때 부모가 책을 읽어 주는 문화가 당연한 하루 일과로 정착돼 있다. 루터교의 영향으로 가정에서 부모가 아이들에게 성경을 읽어 준 문화가 오래도록 유지되어 온 영향이기도 하다. 가정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책 읽기를 자연스럽게 수업 속에 녹여 낸다. 오랜 시간 공들인 교육 개혁을 통해서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이 아니라, 필요한 지식을 탐구하는 방법과 습관을 익히는 수업을 진행한다. 핀란드에는 정해진 교과서도 따로 없다. 교사가 수업 진행을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만들기도 하지만, 관련된 책 읽기를 통해 필요한 정보들을 정리하고 취합하는 것이 일상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땅은 넓지만 인구가 적다. 스웨덴의 인구는 1천만 명, 그 외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는 모두 500만 명이 조금 넘는다. 따라서 학교 시설은 잘 갖추고 있지만, 학교마다 도서관을 갖추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대신 지역별로 공공도서관 체계가 잘 되어 있고, 공공도서관 내 어린이 코너가 잘 갖춰져 있다. 어린이 코너는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기반으로 조성된다. 책 놀이터나 이야기 놀이터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간을 다양하게 반영했다.
도서관은 또 다른 의미의 학교
공공도서관 사서는 관내 학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사서가 정기적으로 학교를 방문하여 도서관과 관련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교사가 학생들을 인솔하여 도서관을 방문하기도 한다.
공공도서관이 학교와 연결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코펜하겐 외레스타드에 있는 공공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열람실 한쪽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바로 초등학교 복도와 연결되어 있었다. 외부인은 학교를 자유롭게 출입하지 못하지만, 어린이들은 도서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구조이다.
도서관 열람실 내에는 ‘하지 마라’는 팻말이 거의 없다. 칸막이나 벽도 없다. 어린이들은 자유롭게 다니며 인터넷도 하고, 게임도 한다. 그렇다고 학생들을 방치하는 것은 아니다. 강요하거나 주입하지 않을 뿐 늘 세심하게 살펴보며 책을 좋아하고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이러한 노력은 어린이들을 책의 세계에 머물게 하려는 시도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10대 아이들만 입장할 수 있는
특별한 도서관
스웨덴 스톡홀름 쿨투어후셋에 있는 도서관 ‘티오트레톤(Tiotreton)’은 10~13세에 해당하는 청소년들만을 위한 특별한 도서관이다. 입구에는 레드라인이 그려져 있어 다른 연령층이 입장할 수 없음을 알려 준다.
도서관 내부는 강렬한 빨강색으로 꾸며져 있다. 바닥에는 몸을 푹 싸안을 듯이 올록볼록 커다란 쿠션이 여러 방향으로 놓여 있고, 벽 쪽은 물결치듯 계단이 둘러싸고 있다. 세르옐 광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유리창 가까이에는 새집처럼 둘이 짝을 지어 앉아 있기 좋은 공간들을 만들어 놓았다. 다른 쪽에는 컴퓨터도 있고, 보드게임도 있고, 재봉틀도 보인다. 그저 둘러만 보아도 청소년들이라면 무척 좋아할 것 같다.
티오트레톤은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들이 도서관에 계속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려고 만든 공간이다. 도서관으로 분류는 하지만 도서관이라는 이름도 붙이지 않았고, 도서를 중심으로 내부를 꾸미지도 않았다. 곳곳에 둘만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 마치 사춘기 아이들의 클럽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도서관 서비스는 다른 시립도서관들과 똑같이 이용할 수 있다.
또래 친구들의 비밀 아지트가 된
도서관
보통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완결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지만, 어린이들이 완성된 형태로만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연결하지는 않는다. 어린이들은 이미 완성된 이야기보다는 자기 상상에 따라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 것을 즐기고, 이 과정을 통해 사고와 언어 감각을 발달시켜 나간다. 어린이에게 도서관은 정해진 책을 읽게 하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모티브를 자유롭게 연결하면서 생각하고, 모험하고, 즐길 수 있게 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노르웨이의 오슬로 시내에 있는 도서관 비블리오퇴인은 일찍부터 청소년 이용자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던 곳이다. 비블리오퇴인 도서관 관계자들은 청소년들과 함께 스톡홀름의 티오트레톤을 둘러보고는 도서관 인근에 10~15세 청소년들만의 전용 공간인 ‘비블리오퇴인’을 만들었다. 청소년들의 의견에 따라 용도 폐기된 것들을 되살려서 건축 소재로 삼고, 친구끼리의 관계를 중시하는 욕구를 반영하여 작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산간에서 목재를 날랐을 듯한 오래된 화물트럭을 이용해 친구와 가깝게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트럭 화물칸은 이동식 포장마차로 만들고, 친구들끼리 둘러앉아 즉석요리를 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조리 도구도 갖춰져 있다. 스키장에서 사용을 하지 않는 곤돌라를 가져다 설치해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도서관
북유럽 어린이들에게 도서관은 학교만큼이나 일상적인 공간이다. 학교 수업이 끝난 뒤에 도서관에 가면 늘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어린이들을 볼 수 있다. 학교 과제를 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아온 것이다. 친구들과 자료를 찾고, 어려우면 사서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의견을 나누어 정리하며 발표 자료를 만든다. 교사는 어린이들이 발표한 내용에 대해 평은 하지만, 성적을 매기지는 않는다. 주제에 대한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방법을 읽히는 것이지, 누가 더 잘했는가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도서관을 다니며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운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도 늘 도서관을 찾게 되는 것이다. 삶에 깊숙이 들어온 도서관의 영역이 사회 전체로 확장되면서 북유럽의 여러 나라가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복지 국가로 거듭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