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이 진짜 기자님이야!”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려는 찰나, 정환용 교장 선생님이 취재 수첩을 든 어린이를 소개했다. “기자님, 우리 학교 기자단 친구예요. 응원 좀 부탁드려요.” 어린이 기자가 내민 수첩에는 이런저런 질문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질문하는 학생’을 양성해야 한다는 교장 선생님의 뚜렷한 교육 철학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눈 직후여서 그런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기자가 말을 건네기도 전에 아이는 이미 큰 응원을 받고 있었다. 이 어린이는 교장 선생님이 누군가에게 자신을 향한 응원을 부탁했다는 그 사실만으로 꿈에 한발 더 가까워졌을 테니 말이다. 전교생 모두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는 정환용 교장 선생님의 교육 철학은 이미 현장에서 실현되고 있었다.
글 유승혜 사진 오경택
매일 아침 ‘비타민’을 전하는 교장 선생님
인터뷰를 진행한 학교는 봄의 빛으로 온통 푸르렀다. 푸른 잔디 위에서 1, 2학년 아이들이 뛰놀고 운동장 주변을 둘러싼 나무들은 연둣빛 물감을 푼 듯 새로 난 이파리로 무성했다. 뛰노는 아이들의 청량한 웃음소리, 작은 연못 안에서 뿜어내는 분수 소리, 여기저기에서 지저귀는 새소리가 어우러졌고 바람은 달큰했다. 코로나19 이후로 이렇게 생기 넘치는 운동장은 처음이었다.
“오늘이 우리 학교 천연 잔디 운동장 첫 개장일이에요. 곧 어린이날 100주년이기도 해서 만국기를 걸고 학년별 작은 운동회를 열었어요.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아이들 인사가 더 활기차더라고요.”
정환용 교장 선생님은 오늘 아침도 교문 앞에서 등교하는 아이들을 맞이했다. 포이초 학생들은 교장 선생님의 뒷모습만 봐도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한다. 그만큼 교장 선생님과의 친밀감이 두텁다.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눈을 마주치며 ‘파이팅’을 외쳐 주고, 가끔 아이들의 풀린 운동화 끈을 직접 묶어 주기도 한다. 아이들과 인사를 하며 걸음걸이와 표정으로 아이들의 기분을 읽는다. ‘인사는 비타민’이라고 말하는 교장 선생님의 필수 일과다.
코로나19로 등교가 중단된 때를 제외하고는, 교장으로 첫 부임한 2018년부터 지금까지 등교 인사를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다.
변화와 새로움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현재 포이초의 안팎 모습은 꾸준한 관찰과 질문 덕분에 완성됐다. 공립학교에서 보기 드문 천연 잔디 운동장부터 학교 정원 안의 작은 동산 산책로 ‘꿈담길’, 서울시교육청의 학교 공간 재구조화사업으로 탈바꿈한 ‘꿈담교실·꿈담놀이터·꿈담화장실’, 이웃한 국립국악고등학교와 연계해 창단한 국악오케스트라에 이르기까지 포이초의 교육 인프라는 무엇 하나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지난 4년간 이뤄 낸 성과들이지만 정환용 교장 선생님은 여기서 만족하지 못한다. 가시적인 무언가를 더 만들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다. 당장 보이지 않고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그래서 더 어렵고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뚜렷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불편함을 해결한 질문의 결과거든요. 물음표 없는 편안함은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무기력해집니다. 자꾸 관찰하고 질문해야 변화가 생기고 새로움이 생겨요. 저의 화두는 질문입니다. 스스로 질문하는 교육자가 되는 동시에 질문하는 학생들을 길러 내는 것이 저의 교육 목표입니다.”
정답 노트가 아닌 질문 공책이 필요한 이유
“등교할 때 꿈담길에 멈춰 서서 두리번거리는 아이들이 있어요. 가만 보면 물소리도 듣고 나무도 관찰해요. 그러면서 뭔가 궁금한 것들이 생기겠죠. 그 호기심이 곧 창의력의 시작입니다.”
교장 선생님은 학교에서 자체 제작한 ‘질문 공책’을 꺼내 들었다. 포이초 재학생 모두가 가지고 있는 노트다. 선생님이 전달한 지식을 그대로 되받아 쓰거나 암기를 위해 쓰는 노트가 아닌, 생각하고 질문하는 공책이다. 핵심은 궁금한 점이 떠오르면 그 즉시 적는 것이다. 기록하지 않은 머릿속 궁금증과 아이디어는 금세 휘발하기 때문이다. 정답이 아닌 질문을 쓰는 공책이기에 같은 수업을 들었어도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담아 질문을 기록한다.
“우리 교육은 참 오랫동안 ‘대답을 찾는 교육’에 익숙했습니다. 과거엔 학생의 질문이 권위의 도전처럼 여겨졌고요. 정답을 요구하는 경직된 교육 안에서 질문은 없었어요. 생각이 갇힌 교육 안에서 창의성이 나오기는 어렵죠. 그러니 알려 주기보다는 알고 싶어하게 만드는 질문 교육으로 생각을 키워야 해요.”
질문하는 삶은 언제나 옳다
교장 선생님은 1990년부터 교사와 장학사로, 또 교감, 교장으로 오랜 시간 교육에 몸담으면서 우리 초등교육의 변화와 발전을 체감했다. 일제고사 폐지, 창의적 체험 활동 확대, 토론교육 강화 등 초등교육은 과거보다 많이 유연해졌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교육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렇기에 코로나19 상황은 우리 교육의 위기가 아닌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다.
정환용 교장 선생님은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원격수업 상황에서 상호작용을 강화하기 위하여 신속하게 실시간 화상수업을 진행하는 한편 아이들의 독서 교육을 강화했다. 문해력 저하가 문제인 요즘, 참된 사유를 하려면 독서가 필수라는 생각에서다. 여러 권의 책을 읽고 ‘독서왕’이 된 아이들은 교장실에서 독서 배지와 독서 가방 등을 선물했다. 교장실에 놀러 온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용 도서도 비치해 두었다. 물론 등교 중단이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순조롭지만은 않은 과정이었지만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이 의견을 내고 손을 모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소통했다.
“내 생각이 정답이라고 우기는 순간 갈등이 생깁니다. 그래서 반드시 질문이 동반되어야 하죠. 삶에 정해진 답은 없지만 질문하는 삶은 항상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숨은 능력을 질문으로 끌어내다
코로나19가 쏘아 올린 교육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질문하는 인간’, 즉 창의적인 인간의 배출을 가속화 시킬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정환용 교장 선생님은 어떤 시대가 와도 교육의 본질은 잊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육을 뜻하는 단어 에듀케이션(education)의 라틴어 어원을 들여다보면 ‘밖으로 이끌어 내다(duco)’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아이들의 잠재된 창의성을 질문 교육을 통해 끌어내고 싶어요. 내 안의 궁금한 것을 표출하고 그 답을 탐구하며 자신이 주인이 된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요.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겠죠. 가끔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노벨상을 타면 수상 소감 때 내 이름을 꼭 호명해 달라고요(웃음).”
교정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꿈담놀이터 위에 선 정환용 교장 선생님이 아이처럼 웃었다. 키 작은 아이들도 이 놀이터 위에 서면 학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학교가 품은 아이가 아닌, 학교를 품은 아이가 꾸는 꿈이 곧 정환용 교장 선생님의 꿈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