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의 열정과 신념을 공감하며
도란도란 소통할 수 있는 교육 정보 매거진

[공감 talk] 열정과 냉정 사이

마음이 자라는 교실


싸늘하고 경직된 분위기에 고구마가 쌓이다
솔직히 말하면, 올해는 6학년을 맡고 싶지 않았다. 내가 2년 동안 바라본 다섯 명의 6학년 아이들은 예의는 바르나 항상 표정이 어두워 활기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가 밝으니까! 내가 분위기 살리면 되지 뭐!’ 하고 마음을 다시 고쳐 잡은 뒤, 6학년 담임교사 희망란에 시원하고 자신 있게 사인을 했다. 그리고 3월 첫날, 6학년 교실 문을 열고 인사를 했다. “얘들아, 안뇽하소!”과장스러운 밝은 외침에도 아이들은 나를 보며 잔뜩 얼어 있었다. 매 수업 시작 5분 전에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수업하는 동안 친구랑 잡담하는 일은 아예 한 번도 없었다. 어찌 보면 좋아 보이지만 이런 상황이 너무나 부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표정이 전부 경직돼 있었기 때문이다. 잡담뿐이랴. 수업 시간에 내가 물어보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는 아이가 아무도 없었다. 단순히 느낀 점 한 마디를 듣는 데에도 최소 10분을 기다려야 했다. 고구마 100개를 꾸역꾸역 먹은 느낌이었다.

우리 반 규칙은 규칙 없음!
이렇게 계속 고구마만 먹다가 내가 병이 나 죽을 것 같았다. 3월부터 참 열심히 까불었다. 일부러 학기 초에는 교과서도 아예 펴지 않고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에게 캠핑 의자를 하나씩 사 주고 햇살 좋은 날이면 야외 수업을 했다. ‘1.2.3밴드’라는 음악 밴드도 만들어 악기를 배우며 신나게 노래도 불렀다. 하루에 한 톨씩 아이들의 칭찬할 점을 열심히 찾아 매일 선물해 주었다. 우리 교실은 규칙이 없는 게 규칙이라 할 정도로 그냥 자유롭게 놓아주었다. 그저 우리 반 아이들이 좀 더 자신의 말과 행동에 자신 있고, 규율에 너무 구애 받지 않으며 천진하게 밝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다행히도 나의 바람대로 교실 분위기가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달라지는 표정과 목소리가 그걸 증명해 주었다.

솔직한 마음을 투명하게 보여 주기
‘1학기에는 친밀한 관계도 형성된 거 같고 경직된 분위기도 잘 풀리고 있으니 2학기엔 좀 더 깊은 배움으로 성장시켜 보자!’2학기가 시작되기 전 당찬 각오를 다졌지만, 2학기 첫날부터 절망감이 밀려왔다.‘뭐야! 데자뷰야? 3월 첫날이랑 완전 똑같잖아.’한동안 어이가 없어 말을 잇지 못했다. 하루 이틀은 어떻게든 보내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나의 솔직한 마음을 아이들에게 말하자! 아이들의 마음 역시 내 맘대로 유추하지 말자. 나는 너희들 마음을 잘 모르겠으니 제발 좀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빌어 보자!’ 교과서를 다시 책상 서랍에 집어넣고, 아이들에게 천천히 나의 마음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교사의 허물을 벗고, 형식적인 말치레는 다 버린 뒤 아이들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내 눈에 눈물이 고이자 아이들 눈이 동그래졌다.

너희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할게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아이들도 그동안 숨겨 왔던 이야기를 하나둘씩 꺼내 놓았다. 대부분 과거의 한 담임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어찌나 사소한 일들에 여러 번 혼이 났는지, 선생님의 감정적인 대응과 큰 호통 소리에 얼마나 놀랐는지……. 이야기하는 내내 아이들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이들의 이야기에 참았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재작년까지 해 왔던 그 많은 ‘선생질’이 그것과 너무 닮은 것 같이 생생했다. 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바라보며 말했다.“얘들아, 정말 미안해. 선생님은 그것도 모르고 너희들이 참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어. 너희들이 이렇게 마음에 큰 병을 안고 사는지 정말 몰랐어. 선생님도 14년 동안 나를 거친 학생들이 떠올라서 스스로 반성하게 돼. 너무 가슴이 아프구나.”그리고 약속했다. “그런데 얘들아, 선생님 한 번만 더 믿어 주면 안 될까? 혼내지 않을게. 그때와 같은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나 무서워하지 마. 더 이상 교실에서 혼날까 죽은 척 조용히 있지 마. 그냥 떠들어도 돼. 너희들 마음이 가는 대로 해 줘라, 응? 정말 약속할게. 선생님은 너희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하려 노력할 거야.”내 말에 아이들 중 몇몇이 눈물을 또르르 흘렸다. 시간이 지나도 모두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기에 좀 더 시간을 두고, 한 명씩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말하도록 기다려 주었다. “제 마음을 알아주는 선생님이 한 분 계셔서 참 좋고 감사해요.” “선생님을 좀 더 일찍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어요.” “선생님을 만나면 왠지 큰 자신감이 생겨 용기 내어 여러 활동을 할 수 있었어요.” “선생님들이 소리치고 윽박지를까 봐 무섭다는 말을 마음에만 담아 두는 게 아니라 선생님에게 직접 할 수 있다니 정말 시원했어요.”

교실 안에서 함께 성장하는 존재들
어리고 약한 생명체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전략으로 많이 쓰는 것이 바로 ‘죽은 척하기’다. ‘살기 위해 죽은 척하는 태도.’ 나보다 강한 이들의 눈치를 보며 내 마음과는 다른 그들의 방식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던 수많은 삶의 자락이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른답지 못하게 이 생존 전략을 자주 사용하였고, 지나고 나면 스스로 비겁하단 생각에 매 순간 자책하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지금의나’가 아닌 그저 ‘어린 나’가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생존 전략이었음을 인정하고 나니 다음 성장의 지점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매우 중요한 것은 이젠 더 이상 내가 어리고 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더 이상 생존의 전략인 ‘살아남기 위해 죽은 척하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전략인 ‘죽도록 함께 살아가기’로 한 단계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과 마음을 터놓은 날. 이날 하루가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너무나도 뜻깊고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잘 버텨 주어서 너무나도 감사했고, 2학기 내내 더욱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만나 갈 수 있었다. 교사인 나도, 학생인 아이들도 더욱 함께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너희들은 더 이상 약한 존재가 아니란다. 각자 너희 눈동자에 담겨 있는 세상을 바라보며 매일 응원하고 사랑할게. 생존을 넘어 성장으로! 선생님과 함께 다시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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