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의 열정과 신념을 공감하며
도란도란 소통할 수 있는 교육 정보 매거진

[공감 talk] 열정과 냉정 사이

교사의 해방클럽

이미지

 

# 분열 교사는 매일 ‘누아르’ 영화를 찍는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에서 교사만큼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영화를 찍는 직업은 드물 것이다. 영화의 장르는 대부분 ‘누아르’다. 누아르의 핵심은 무엇인가? 누아르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분열된, 그러나 견디는 사람들’이다. 예상하지 못한 운명,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부조리, 얽히고설킨 상황에서의 소외 등 누아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인생 서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촘촘히 부서진다.

교사들은 출근하는 순간부터 수많은 사람과의 연결망 속에서 사는 동시에 그들의 삶에 궁극적인 영향을 끼치며 일한다. 사람과의 연결망은 교사가 통제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예기치 못한 불확실성이 존재하기에 대부분의 교사는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며 일상을 보낸다.

 

그렇다. 교사들은 견디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철학 없는 교육 정책, 현장을 모르는 관료들의 헛소리, 소통하기 힘든 학부모, 어른이 사라진 마을 속에서 교사는 그저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간다. 그러한 ‘견딤’이 가능한 이유는 소중한 아이들의 삶을 기르는 것에서 그나마 작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는 바로 그 ‘의미’라는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고 오늘도 힘든 관계망을 견디고 있다.

 

그런데 교육 현장은 점점 이러한 의미마저 찾기 어려운 공간이 되어 간다. 교사 문화를 잠식하는 ‘개인주의’ 경향이 갈수록 극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와 소통하지 않고 개인적 세계로 침잠하며, 교육활동을 업무로 인식해 자기 영역을 정확하게 구분하려는 학교 문화가 교사들을 점점 개인 단위로 고립시키고 있다. 나아가 교육활동의 결과를 수치화하여 서열화하려는 천박한 관료주의적 교원 정책은 교사에게 반복된 무력감을 안긴다. ‘개인주의’와 ‘수치화’는 필연적으로 허무주의, 다시 말해 ‘의미 상실 현상’을 불러온다.

 

# 허무주의 구경꾼을 강요하는 사회

 

자본주의라는 짐승은 학교라는 ‘의미의 공간’을 거대한 알고리즘으로 만들었으며, 신자유주의라는 폭주 기관차는 교환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던 교육을 시장 상품으로 전락시켰다. 교사는 관료제의 부품이 되었고, 교육활동을 통해서 자신만의 의미를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언제라도 대체 가능한 교환 대상이 되었다. 자신의 본업에서 의미를 형성할 수 없는 사람에게 남겨진 것은, 지독한 소외와 허무뿐이다. 이러한 허무를 부채질하는 것이 ‘과학적 사고의 독백’이다 .

<학교 혁신의 패러독스>의 저자 서근원은 학교를 지배하는 과학적 사고의 독백을 ‘계량주의’로 설명한다. 근대 학교 제도는 학생들에게 동일한 교육의 내용을, 동일한 시간 동안 동일한 속도로 학습하게 하고, 학생이 학습해야 하는 내용과 결과를 수량화하여 제시하거나 판단한다. 교사의 전문성 역시 수치화되고 있다. 중앙정부는 교사 전문화를 표준화하여 교사가 갖추어야 할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명세화하여 교사 역량을 측정한다. 이러한 통제 강화는 교사의 일이 교육의 본질과 멀어지는 탈전문화 현상으로 나타난다.

거기다 사람이라는 본질적 가치가 사라진 ‘관료주의적 교원정책’은 <리어왕>에 등장하는 리어와 같이, 어떤 것을 증명할 수 없으면 그것은 처음부터 없는 것이라고 교사를 볶아댄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일상이라는 복잡한 연결망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현상에 다이빙하여 자신만의 교육적 의미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교사는 파편화된 개인이 되어, 모든 것을 수치화하여 증명하는 데 몰두하고 있으며, 학교 공동체의 문제보다 개인의 문제에 점점 침잠하는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있다. 교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이러한 ‘구경꾼’을 강요하는 문화에 저항하여 ‘복잡한 연결망’이라는 교사의 일상에서 의미를 생성할 수 있는 ‘해방의 경험’이다.

 

# 독서 ‘해방 공동체’를 만드는 징검다리

 

그렇다면 교사는 어떻게 해방될 수 있는가? 교사에게는 아이들의 삶에 다이빙할 수 있는 열정의 회복과 함께, 세상을 균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직관의 회복이 필요하다. 나아가 내가 직면하고 있는 세상과 현상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추상력도 필요하다. 이러한 직관과 논리적 추상력을 통해서 교사는 ‘관료주의적 메시지’로부터 해방되어 복합적 연결망이 주는 일상의 의미에 대해서 나름의 해석을 시도하는 어른으로 ‘함께’ 성장해야 한다. ‘해방’과 ‘의미 생성’을 위한 가장 좋은 징검다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독서’일 것이다.

우리를 위로하는 수많은 요소 중에서, 독서만큼 깊은 침잠의 시간을 주는 요소는 드물다. 자아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인 ‘세계관’의 확장에도 깊은 영향을 주는 것이 독서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삶을 기르는 교사에게 독서만큼 좋은 벗은 드물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책중에서 교사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많은 책이 있지만, 그중에서 교사가 읽어야 할 주제를 고르라고 하면 역시, ‘나를 불편하게 하는 책’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안 그래도 힘든데, 굳이 그렇게 나를 불편하게 하는 책을 읽을 필요가 있나요?”라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책은 교사를 해방시킬 수 없다. 그러한 불편함을 추앙할 준비가 된 교사라면, 먼저 알베르 카뮈의 작품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중에서도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는 교사라면 꼭 읽어 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두 작품은 각각 문학과 철학 에세이라는 다른 형식으로 적혀 있지만, 모두 ‘삶의 부조리’라는 인간 삶의 본질과 그로부터의 해방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

특히 <시지프 신화>에서 카뮈는 “저항하는 삶을 살라!”고 주문한다. 여기서 저항이라는 것은 거창한 혁명이나 전복적 운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나를 둘러싼 이 세상을 균형적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의미로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 자체가 ‘저항’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해석의 과정이 ‘개인적 차원’에서 그치지 않기 위해서 교사에게는 반드시 ‘공동체’가 필요하다.

해방은 반드시 함께 누려야 하듯, 독서도 혼자 해서는 안 된다. 책을 읽고 자기 생각을 검증할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내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반드시 ‘사람’에 비추어서 검증해야 한다. 그러한 ‘해방 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교사의 삶과 철학을 논할 수 있으며, 그 논의 과정에서 지속 가능한 ‘의미’를 생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
상단으로